무정 - 038장

신우선은 전차 오기를 기다리면서 괴로워하는 형식의 얼굴을 보았다. 발전소에서는 쿵쿵쿵쿵 하는 발동기 소리가 나고 누런 복장 입은 차장과 운전사들이 전등빛 아래 왔다갔다하였다. 우선은 생각하였다. ‘월향이가 나더러 평양 친구를 묻던 것이 그 때문이로구나’ 하였다. 한번 우선이가 월향을 찾아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월향이가 농담 모양으로 웃으며,
“나리께 평양 친구가 계셔요?” 하고 우선에게 물었다. 우선은 월향이가 평양 사람이니까 평양 친구를 묻는 줄로 생각하고,
“이삼 인 되지” 하였다. 월향은,
“그래, 그 어른들은 다 무엇을 하시는가요?” 하였다. 이때에 월향은 첫째에 이형식의 거처를 알려 함과, 평안도 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알려 하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월향도 평안도 학생들이 많이 서울에 와 있는 줄은 알건마는 몸이 기생이 되어서는 그 평안도 학생들과 또 평안도 사람 신사들이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월향에게도 평안도 신사가 삼사 인 놀러 왔었다. 그네들은 다 번적하는 양복을 입고 일본말로 회화를 하며 동경에 가서 대학교에 다니던 이야기를 하고 매우 젠체하며 신사인 체하였다. 그러나 월향은 사 년 전 부벽루에서 월화가 ‘저것들은 허자비에 옷을 입힌 것이라’ 하던 말을 생각하고 ‘저들도 역시 허자비에 옷을 입힌 것이라’ 하였다. 그러고는 월향의 생각에 ‘저것들이 평안도 사람으로 서울에 와 있는 일류 신사인가’ 하고 자기의 고향을 위하여 슬퍼하였었다. 그러하던 차에 우선이가 ‘평안도 친구가 이삼 인 있지’ 하는 말을 듣고, 행여나 그 속에 ‘월화의 이상적 인물’이 되임직한 사람이 있는가 하고, 또 그 사람이 자기가 기다리는 이형식이나 아닌가 하였다. 월향의 눈에는 우선은 조선에 드문 남자라 하였다. 옛날 시에 있는 듯한 남자라 하였다. 그러고 그 의식의 호탕함을 더욱 사랑하여 ‘월화 형님에게 보였으면’ 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우선의 친구라 하면 상당한 사람이려니 하고, “그래 그 어른들은 다 무엇을 하시는가요?” 하고 물음이라. 우선은,
“혹은 교사도 하고, 글짓기도 하고, 실업도 한다” 하였다. 월향은 더욱 더욱 유심하게,
“그 중에 누가 제일 좋은 사람이에요? 누가 제일 이름이 있어요?” 하였다. 우선은 유심히 월향의 얼굴을 보며 ‘옳지, 저 계집이 본고향 사람 중에 배필을 구하는구나’ 하고 얼마큼 시기하는 생각이 나서,
“그 중에 이형식이란 사람이 제일 유망하지마는” 하고 이형식의 가치를 낮추기 위하여 ‘하지마는’에 힘을 주었다. 월향은 가슴이 갑자기 뛰었다. 그러나 그 빛을 감추고 아양을 부리며, “유망하지마는 어때요?” 하였다. 우선은 자기가 친구의 험담을 한 듯하여 적이 부끄러운 생각이 나면서,
“응, 이형식이가 좋은 사람이지…… 매우 유망하지” 하고는 그래도 행여나 이형식에게 월향을 빼앗길까 두려워, “아직 유치하지…… 때를 못 벗어서” 하고 자기보다 훨씬 낮은 사람 모양으로 말하였다. 무론 이것이 거짓말은 아니라. 우선은 결코 형식을 자기보다 인격으로나 학식으로나 문필로나 승하다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뿐더러 자기와 평등이라고도 생각지 아니한다.) 그래서 ‘형식은 우선 한문이 부족하니까’ 하고 형식이가 자기보다 일문과 영문이 넉넉한 것은 생각지 아니한다. 그러고 자기는 어디까지든지 형식의 선배로 자처하며, 형식도 구태여 우선과 평등을 다투려 하지 아니하고, 우선이가 선배로 자처하면 형식도 우선을 선배 모양으로 대접하였다. 그리하다가 일전에 우선이가 형식에게 허교하기를 청할 적에도 형식은 윗사람에게서 허락을 받는 모양으로 극히 공손하였다. 그러나 우선은 결코 형식을 미워하거나 멸시하지 아니하였다. 우선은 ‘형식의 유망함’을 진실로 믿었다. 그러므로 월향에게 ‘유망은 하지마는 아직 때를 못 벗었어’ 한 것은 결코 형식을 비방함이 아니요, 자기가 형식에게 대한 진정한 비평을 말한 것이라.
‘아아, 그때에 내가 월향에게 형식을 소개한 것이 이러한 뜻을 가졌던가’ 하고 다시금 전차를 기다리고 섰는 형식을 보았다. 형식은 조민한 듯이 왔다갔다하며 동편만 바라보고,
“어째 전차가 아니 오는가?”
“밤이 깊었으니까 삼십 분에 한 번씩이나 다니는지” 하고 우선은 형식의 괴로워함을 동정하였다. 형식은 애처로워서 우선을 손을 꼭 쥐며,
“참, 오늘 저녁 힘을 써주게” 하였다. 외로운 형식의 지금 경우에는 우선이밖에 믿는 사람이 없었다. 우선이만 자기를 도와 주면, 영채는 건져 낼 수가 있거니 하였다. 우선은 “걱정 말게” 하고 돌아서면서 픽 웃었다. 그 웃음에는 까닭이 있었다.
우선은 경성학교 교주 김남작의 아들 김현수와 배명식 양인이 월향을 청량리로 데리고 갔단 말을 월향의 집에서 듣고, 월향은 오늘 저녁에는 김현수의 손에 들어가는 줄을 짐작하였다. 그래서 우선은 빨리 종로경찰서에 가서 형사에게 말을 하여 (귓속하여) 후원을 청하고, 김현수의 계교를 깨트리려 하였다. 월향을 아주 김현수의 손에서 뽑아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신문에 발표하여 실컷 분풀이나 하고, 혹 될 수 있으면 김현수에게서 맥줏값이나 빼앗으려 하였다. 아까 철물교에서 전차를 탄 것은 바로 종로경찰서로서 나오던 길이었다. 그러한 일이러니 이제 들어 본즉, 월향은 형식에게 마음을 바친 사람이라 한다. 미상불 시기로운 생각도 없지 아니하나 형식의 뜻을 이뤄 줌이 옳은 일이라 하였다.

무정 - 03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