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042장

“얘, 월향아!”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음을 보고 노파는 영채의 곁에 웅크리고 앉아서 영채의 등을 흔들며,
“얘, 월향아! 왜 우느냐?” 하였다. 영채는 고개를 들어 노파를 보았다. 그 치마도 아니 입은 두 다리와 뚱뚱한 몸뚱이가 구역이 날 듯이 더럽게 보인다. 더구나 그 음흉하고도 간사하여 보이는 눈이 더욱 불쾌하다. 저 노파는 내 피를 빨아먹고 저렇게 뚱뚱하여졌구나. 내가 칠 년간 갖은 고락을 다 겪은 것도 저 노파 때문이요, 내가 십구 년 동안 지켜 오던 정절을 이렇게 더럽히게 됨도 저 노파 때문이로구나. 이년의 할멈쟁이를 빠싹빠싹 깨물고 씹어 주고 싶구나 하였다. 오늘 나를 청량리에 보낸 것도 저 노파의 꾀로구나. 저 노파가 내가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 나를 청량리에 보내었구나, 하고 원망스럽게 노파를 보았다. 노파는 피가 선 영채의 눈을 보고 무서운 마음이 생기는 것을 억지로 참고 더욱 다정한 목소리로,
“웬일이냐, 네 입에 피가 묻었구나. 입술이 터졌느냐?”
영채는 이것이 다 너 때문이로다 하면서,
“내가 깨물었소! 뜯어먹을 양으로 깨물었소! 남들이 내 살을 다 뜯어먹는데, 나도 내 살을 뜯어먹을 양으로 깨물었소!” 이 말을 할 때에 영채는 노파의 두텁게 생긴 입술을 깨물어뜯고 싶었다. 노파는 곁에 있는 수건을 집어 들고 영채의 목에 팔을 걸며,
“아프겠구나. 피를 죄 씻자” 한다. 노파의 마음에는 진정으로 영채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난다. 영채는 노파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을 보고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 조곰은 남았구나’ 하면서, 노파가 수건으로 자기의 입에 피를 씻는 것을 거절하지도 아니하였다. 그러고 저 노파의 눈에도 눈물이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영채가 칠 년 동안이나 노파와 함께 있으되 아직 한 번도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한번 노파의 어금니에 고름이 들어서 사흘 동안이나 눈물을 흘려 본 일이 있으나, 그 밖에 누구를 불쌍히 여긴다든가, 또는 제 신세를 위하여서 흘리는 눈물을 보지 못하였다. 영채는 노파의 눈물을 보고 저 눈물 맛은 쓰고 차리라 하였다. 영채는 물어뜯긴 (입술이 아픈 줄도 모른다. 노파는) 입술이 아플까 보아서 부드러운 명주 수건으로 가만가만히 피를 씻는다. 씻으면 또 나오고 씻으면 또 나오고 깊이 박힌 두 앞니빨 자국으로 새빨간 핏방울이 연하여 솟아나온다. 명주 수건은 그만 피로 울긋불긋하게 되고 말았다. 노파는 ‘휘’ 하고 한숨을 쉬며 그 피 묻은 수건을 (물에 비추어 본다. 영채도 그 수건을) 보았다. ‘저것이 내 피로구나. 저것이 내 부모께 받은 피로구나’ 하였다. 그러고 치마 앞자락이 찢어진 것을 생각하고, 아까 청량리 일을 생각하고,
‘우후! 이 피가 이제는 더러운 피가 되었구나’ 하고 노파에게서 피 묻은 수건을 빼앗아 입으로 빡빡 찢으며 또,
‘이 피가 더러운 피로구나, 더러운 피로구나!’ 하고 몸을 우둘 떤다.영채의 눈앞에는 아까 청량리에서 만나던 광경이 더욱 분명하게 보인다. 김현수의 그 짐승 같은 눈, 그 곁에 서서 땀내 나는 손수건으로 영채의 입을 틀어막던 배명식의 모양, 배명식이가 영채의 두 팔을 꽉 붙들 때에 미친 듯한 김현수가 두 손으로 자기의 두 귀를 꽉 붙들고 술냄새와 구린내 나는 입을 자기의 입에 대던 모양, ‘이 계집을 비끄러맵시다’ 하고 김현수가 자기의 두 발을 붙들고 배명식이가 눈을 찡긋찡긋하며 자기의 두 팔목을 대님짝으로 동여매던 모양, 그러한 뒤에, ‘이년, 이 발길년! 이제도’ 하고 김현수가 껄껄 웃던 모양이 더욱 분명하게 보인다. 영채는 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고 발버둥을 치며,
“칼을 주시오! 칼을 주시오! 이 입술을 베어 내어 버리렵니다. 칼을 주시오!” 하고 운다. 노파는 영채를 껴안으며,
“얘, 얘, 월향아! 정신을 차려라, 정신을 차려!” 하고 노파의 눈에 아까 고였던 눈물이 영채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
“얘, 월향아! 참으려무나, 참아.” 영채의 몸은 추워하는 사람 모양으로 떨린다. 영채는 또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따끈따끈한 핏방울이 영채의 가슴에 있는 노파의 손등에 떨어진다. 노파는 얼른 영채의 어깨 위로 영채의 얼굴을 보았다. 영채의 입술에서는 샘물 모양으로 피가 솟는다. 앞니빨에 빨갛에 핏물이 들고 이빨 사이로 피거품이 나와서는 뚝뚝뚝 떨어진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눈과 뺨을 가리어 그림자에 영채의 얼굴은 마치 죽은 사람과 같다. 노파는 영채의 가슴 안았던 팔을 풀어 영채의 목을 안고 영채의 뺨에 자기의 뺨을 비볐다. 영채의 뺨은 불덩어리와 같이 덥다. 노파는 흑흑 느끼며,
“월향아, 내가 잘못하였다, 내가 잘못하였다. 월향아, 참아라, 내가 죽일 년이로다” 하고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노파는, ‘월향이가 이처럼 마음이 굳은 계집인 줄은 몰랐구나’ 하였다. 내가 잘못하여 불쌍한 월향의(월향이) 피를 흘리는구나 하였다. ‘아아 어여쁜 월향! 내 딸 월향이’ 하고 노파는 마음속으로 합장 재배하였다. 노파는 더욱 울음 소리를 내며 영채의 뺨에다 제 뺨을 비비고 영채의 향내 나는 머리카락을 입으로 씹었다. 영채의 찢기고 구겨진 치마 앞자락에는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졌다. 영채가 이빨로 물어뜯은 피 묻은 명주 수건 조각이 영채의 발 앞에 넘너로하여 전등빛에 반작반작한다. 아롱아롱한 자루에 넣어 비스듬히 벽에 세운 가얏고가 웬일인지 두어 번 스르릉 운다. 저편 방에서 노파를 기다리던 영감쟁이가 허리띠도 아니 매고 영채의 문 밖에 와서,
“흥, 울기들은 왜?”
한다.

무정 - 04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