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형식의 기뻐할 것을 상상하고 마치 누구를 전에 못 보던 좋은 구경터에 데리고 가는 모양으로 형식을 데리고 다방골 계월향의 집을 찾았다. 형식도 종각 모퉁이를 돌아설 때부터 우선이가 자기를 영채의 집으로 끌고 가는 줄을 알았다. 그러고 우선이가 자기를 이리로 끌고 올 때에는, 또 우선이가 기뻐하는 양을 보건대 무슨 좋은 일이 있는 줄도 생각하였고, 또 그 좋은 일이라 함은 아마 영채의 몸을 구원하는 일인 줄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벌써 늦었다’ 하였다. 벌써 영채는 처녀가 아니라 하였다. 그러고 어젯저녁에 영채와 선형이가 하얀 옷을 입고 웃으면서 각각 한편 손을 내어밀며 ‘제 손을 잡아 줍시오. 녜’ 하다가 영채의 몸이 문득 변하던 것도 생각하였다. 더구나 영채의 얼굴이 귀신같이 무섭게 되고,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자기의 몸에 뿌리던 것을 생각하였다. 두 사람은 문 밖에 다다랐다. 우선은 형식을 보고 씩 웃으며,
“이 계월향이라는 광명등도 오늘까지일세그려” 하였다. 그러고 단장으로 그 광명등을 서너 번 때리며,
“흥 오늘 저녁에도 누가 계월향을 찾아서 놀러 올 테지. 왔다가 계월향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꼴이 장관이겠네” 하고 한번 더 단장으로 깨어져라 하고 광명등 지붕을 때리고 껄껄 웃는다. 광명등은 아픈 듯이 찌국찌국 소리를 내며 우쭐우쭐 춤을 춘다. 형식은 ‘깨어지면 어쩌나’ 하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웃지도 아니하였다. 우선은 형식의 얼굴에 기쁜 모양이 없는 것을 보고 얼마큼 낙심한 듯이 시치미떼고 크게, “이리 오너라!” 하고 부른다. 행랑에서 어멈이 어린애에게 젖을 먹이든지 옷을 치키며 나와,
“나리, 오십시오? 이리 오너라는 무엇이야요, 그냥 들어가시지!” 한다. 형식은 ‘많이 다녔구나’ 하였다. 그러고 우선이도 영채의 정절을 깨트린 한 사람인가 하였으나 곧 작소하였다. 우선은 단장으로 어멈을 때리는 모양을 하면서,
“아직도 영감이라고 아니 부르고, 나리라고 불러!” 하고 넓적한 앞니를 보이며 깔깔 웃는다.
“아씨 계시냐?” 우선의 말.
“아씨께서 오늘 아침 차로 평양을 내려가셨어요!”
우선은 놀랐다. 형식도 놀랐다. 더구나 우선은 아주 낙담한 듯이 고개를 흔들며,
“왜? 무슨 일로?”
“모르겠어요, 제가 압니까? 어젯저녁 열한점이 친 다음에야 들어오시더니만…… 한참이나 울음 소리가 나더니…… 그 담에는 잠이 들어서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요…… 오늘 식전에 마님께서 구루마를 불러오라 하세요. 그래 아씨께서 어느 연회에를 가시는가…… 연회라면 퍽도 이르다…… 아마 노들 뱃놀이가 있는 게다 했지요. 했더니 아홉점 반 차로 아씨께서 평양엘 가신다구요” 하고 어멈은 아주 유창하게 말한다. 형식은 ‘숫보기는 아니로다’ 하고 놀라면서도 그 어멈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어멈의 얼굴에는 의심하는 빛이 있다. 형식은 ‘평양! 평양은 무엇 하러 갔는가’ 하였다. 방에서 어린애가 울어 방으로 들어가려는 어멈에게 우선이가 말소리를 낮추어,
“아침에 누구 오든 않았던가?”
“아무도 아니 왔어요. 저” 하고 두어 집 건넛집을 가리키며, “저 댁 아씨가 목욕 같이 가자고 오셨더군요” 하고 방으로 들어가 “울지 마라!” 하고 어린애의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난다. 형식은 저렇게 우리를 대하여서는 얌전하게 말하던 사람이 방에 들어가 어린애를 대하여서는 저렇게 함부로 한다 하였다. 우선은 단장으로 땅바닥에 무슨 글자를 쓰더니 형식더러,
“아무려나 들어가 보세그려. 노파에게 물어 보면 알 터이지” 하고 대팻밥 모자를 벗어 들고 앞서서 들어간다. 그러나 우선의 말소리에는 아까 쾌활하던 빛이 없다. 형식도 뒤를 따랐다. 형식은 어젯저녁 이 마당에 서서 그 노파에게 멸시당하던 일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빙긋 웃었다. 형식은 이만큼 오늘은 냉정(冷靜)하더라. 도리어 우선이가 지금은 형식보다 더 애가 탄다.
방에는 사람이 없고 마루에 노파의 이른바 ‘못생긴 영감쟁이’가 무슨 이야기책을 보다 말고 목침을 베고 코를 곤다. 우선은 이 ‘영감쟁이’를 잘 알았다. 이 영감쟁이는 평양 외성에 어떤 부자의 자제로 시 잘 짓고 소리 잘하고 삼사십 년 전에는 평양 성내에 모르는 이 없는 오입쟁이였었다. 그러나 십유여 년 방탕한 생활에 여간 재산은 다 떨어 없애고, 속담말 모양으로 남은 것이 ‘뭣’ 하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하릴없이 일찍 자기의 무릎에 앉히고 ‘어허둥둥’ 하던 이 노파의 집에 식객인지 남편인지 모르는 손이 된 지가 벌써 십여 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노파와 가다가다 다투기도 하고, 혹 심히 성이 나면 ‘괘씸한 년’ 하고 호령도 하더니, 이삼 년래로는 그도 못 하고 사흘에 한번씩 노파에게 ‘나가 뒈져라’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다만 껄껄 웃으며 ‘죄 되느니라’ 할 따름이요, 반항할 생각도 못 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파는 대개는 ‘영감쟁이’를 친절하게 대접을 하였다. 그러고 더욱 기특한 것은, 밤에 잘 때에는 반드시 노파가 자기의 손으로 자리를 깔고, 이 ‘영감쟁이’를 아랫목에 누이더라.
우선은 서슴지 아니하고 구두를 신은 대로 마루에 올라서서 단장으로 마루를 울리며 누구를 부르는지 모르게, “여보? 여보?” 하였다. 형식은 어젯저녁에 섰던 모양으로 서서 어젯저녁에 보던 모양으로 영채의 방을 보았다. 방 안의 모든 것은 그대로 있구나 하였다. 그러나 어젯저녁 모양으로 마음이 번민하지는 아니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