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형식의 손에는 편지가 들렸다. 그러고 한편 끝이 떨어진 봉투는 형식의 무릎 위에 떨어졌다. 노파는 앉은 대로 한 걸음 몸을 움직여 형식의 곁에 가까이 오고, 우선은 몸과 고개를 형식의 어깨 곁으로 굽혔다. 형식의 가슴은 펄떡펄떡 뛰고, 우선과 노파의 눈은 유리로 만든 것 모양으로 가만히 형식의 손이 한 간씩 한 간씩 펴는 편지 글자 위에 박혔다. 형식은 슬픔을 억제하는 듯이 어깨를 두어 번 추더니 편지를 읽는다. 편지는 흐르는 듯한 궁녀체 언문으로 썼다. 우선과 노파의 전신의 신경(神經)은 온통 귀와 눈으로 모였다. 형식은 ‘이형식 씨 전 상서(李亨植氏前上書)’라 한 것은 빼어놓고 본문부터,
“어젯저녁에 칠 년 동안이나 그리고 그리던 선생을 (뵈오매, 마치 이미 세상을) 버리신 어버이를 대한 듯하여 기쁘기 그지없었나이다. 칠 년 전 선생께옵서 안주를 떠나실 때에 집 앞 버드나무 밑에서 이 몸을 껴안으시고, 잘 있거라 다시는 볼 날이 없겠다 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던 것과, 그때에 아직도 열두 살 된 철없는 이 몸이 선생의 가슴에 매어달리며 가지 마오, 어디로 가오, 나와 같이 갑시다, 하던 것을 생각하오매 자연히 비감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소리를 내어 울었나이다.
이렇게 이별하온 후 칠 년 동안 의지할 데 없는 외롭고 어린 이 몸이 부평과 같이 바람 가는 대로, 물결 가는 대로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며 동서로 표류하올 때에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으며 한숨인들 얼마나 쉬었사오리이까.
오직 한 가지 바라는 것은, 평양 감옥에서 철창의 신음을 당하시는 부친을 뵈옴이라, 열세 살 된 계집의 몸이 바람에 불리는 나뭇잎 모양으로 이리 굴고 저리 굴며, 이리 부딪고 저리 부딪쳐 평양 감옥에 흙물 옷을 입으신 부친의 얼굴을 대하기는 하였사오나, 무섭게 여윈 그 얼굴을 대할 때에 어린 이 몸의 가슴은 바늘로 쑥쑥 찌르는 듯하였나이다.
이에 철없는 이 몸은 감히 옛날 어진 여자의 본을 받아 몸으로써 부친을 구하려는 마음을 품고, 어떤 사람의 소개로 기생에 판 것은 이 몸이 열세 살 되던 해 가을이로소이다. 그러하오나 이 몸을 팔아 얻은 이백 원은 이 몸을 팔아 준 사람이 가지고 도망하니 부모의 혈육을 팔아 얻은 돈으로 부친의 몸을 구원하지도 못하고 철장에서 신음하시는 늙으신 부친에게 맛난 음식 한 때도 받들어 드리지 못한 것이 골수에 사무치는 원한이어든, 하물며 이 몸이 기생으로 팔림을 위하여 부친과 두 형이 사오 일 내에 세상을 버리시니 슬프다, 이 무슨 변이오리이까. 이 몸이 전생에 무슨 죄가 중하여 어려서 부친과 두 형을 옥에 가시게 하고, 다시 이 몸으로 말미암아 부친과 두 형으로 하여금 원망의 피를 뿜고 세상을 버리시게 하나이까. 오호라 이를 생각하오매 가슴이 터지고 골수가 저리로소이다. 이 몸이 만일 적이 어짐이 있었던들 마땅히 그때에 부친에 뒤를 따랐을 것이언마는 차홉다 완악한 이 목숨은 그래도 끊어지지 아니하고 부지하였나이다.
부친과 두 형을 여읜 후, 이 몸이 세상에 믿을 이가 누구오리까. 선생께서도 아시려니와 이 몸이 의지할 곳이 어디오리까. 아아, 하늘뿐이로소이다. 땅이 있을 뿐이로소이다. 그리하고 세상에 있어서는 선생뿐이로소이다.
이 몸은 그로부터 선생을 위하여 살았나이다. 행여나 부평같이 사방으로 표류하는 동안에 그리고 그리는 선생을 만날 수나 있을까 하고 그것을 바라고 이슬 같은 목숨이 오늘까지 이어 왔나이다. 이 몸은 옛날 성인과 선친의 가르침을 지키어 선친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이 몸을 허하신 바 선생을 위하여 구태여 이 몸의 정절을 지키어 왔나이다. 이 몸이 이 몸의 정절을 위하여 몸에 지니던 것을 여기 동봉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몸은 이미 더러웠나이다. 아아, 선생이시여, 이 몸은 이미 더러웠나이다. 약하고 외로운 몸이 애써 지켜 오던 정절은 작야에 물거품〔水泡〕에 돌아가〔歸〕고 말았나이다.
이제는 이 몸은 천지가 허하지 못하고 신명이 허하지 못할 극흉 극악한 죄인이로소이다. 이 몸이 자식이 되어는 어버이를 해하고 자매가 되어는 형제도 해하고 아내가 되어는 정절을 깨트린 대죄인이로소이다.
선생이시여! 이 몸은 가나이다. 십구 년의 짧은 인생을 슬픈 눈물과 더러운 죄로 지내다가 이 몸은 가나이다. 그러나 차마 이 더럽고 죄 많은 몸을 하루라도 세상에 두기 하늘이 두렵고 금수와 초목이 부끄러워, 원(怨)도 많고 한(恨)도 많은 대동강의 푸른 물결에 더러운 이 몸을 던져 탕탕한 물결로 하여금 더러운 이 몸을 씻게 하고, 무정한 어별로 하여금 죄 많은 이 살을 뜯게 하려 하나이다.
선생님이시어! 이 세상에서 다시 선생의 인자하신 얼굴을 대하였으니 그만하여도 하늘에 사무친 원한은 푼 것이라 하나이다. 후일 대동강상에서 선생의 옷에 뿌리는 궂은 비를 보시거든 박명한 죄인 박영채의 눈물인가 하소서. 이 편지 마치고 붓을 떼려 할 제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리오나이다. 오호라 선생이시여 부디 내내 안녕하시고 국가의 동량(棟樑)이 되셔지이다” 하고 떨리는 붓으로, ‘歲次丙辰六月二十九日午前二時에 죄인 朴英采는 泣血百拜(세차병진 유월 이십구일 오전 두시에 죄인 박영채 읍혈백배)’라 하였다. 차차 더 떨던 형식의 손은 그만 편지를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그러고 흑흑 느끼며 굵은 눈물을 무릎 위에 펴놓인 편지 위에 떨어뜨린다. 떨어진 눈물은 편지에 쓰인 글자를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우선도 소매로 눈물을 씻고, 노파는 치마로 낯을 가리오고 방바닥에 엎드린다. 한참이나 말이 없다. 마당에서는 점점 더 단김이 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