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053장

우선은 속으로 영채의 이번 행위는 마땅하다 하였다. 정조가 여자의 생명이니 정조가 깨어지면 몸을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여자 된 영채가 어젯저녁 청량사 사건에 대하여 잡을 길은 이 길밖에는 없다 하였다. 그러고 영채는 과연 옳은 여자로다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고 자기가 여태껏 영채를 유혹하던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사상(思想)에는 모순(矛盾)이 있는 줄을 우선은 모른다. 영채가 기생 월향일 때에는 기생이니까 정절을 깨트려도 상관이 없고, 월향이가 영채가 된 뒤에는 기생이 아니니까 정절을 지킴이 마땅하다…… 이것이 분명한 모순이언마는 우선은 그런 줄을 모른다. 우선의 생각을 넓히면 ‘열녀는 열녀니까 정절을 깨트림이 죄어니와, 열녀 아닌 여자는 열녀가 아니니까 정절을 깨트려도 죄가 아니라’ 함과 같다. 그러면 이는 선후(先後)를 전도(顚倒)함이니, 열녀이니까 정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절을 지키니까 열녀어늘, 우선의 생각에는 열녀면 정절을 지킬 것이로되, 열녀가 아니면 정절을 지키지 아니하여도 좋다 함이라. 그러므로 우선은 영채가 열녀인 줄을 모를 때에는 정절을 깨트려 주려 하다가 열녀인 줄을 안 뒤에는 영채의 정절을 깨트리려 한 것을 후회하고 부끄러워함이라. 아무려나 우선은 영채의 이번 행위가 가장 좋은 행위라 한다. 그러나 형식은 이 일에 대하여 우선의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생각한다. 형식도 영채가 그처럼 정절이 굳은 것을 김탄은 한다. 죽으려고까지 하는 깨끗하고 거룩한 정신을 보고 존경도 한다. 그러나 형식의 생각에는 우선과 같이 ‘영채의 이번 행위가 가장 옳은 일’이라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사람의 생명(生命)은 우주(宇宙)의 생명과 같다. 우주가 만물(萬物)을 포용(包容)하는 모양으로 인생(人生)도 만물을 포용한다. 우주는 결코 태양(太陽)이나 북극(北極)만으로 그 내용(內容)을 삼지 아니하고, 만천(滿天)의 모든 성신(星辰)과 만지(萬地)의 모든 만물로 다 포용을 삼는다. 그러므로 창궁(蒼穹)에 극히 조고마한 별도 우주의 전생명(全生命)의 일부분(一部分)이요, 내지 지상(地上)의 극히 미세(微細)한 지풀잎 하나, 티끌 하나도 모두 우주의 전생명의 일부분이라. 태양이 지구(地球)보다 위대(偉大)하니, 태양(太陽)이 우주(宇宙)의 생명(生命)에 대한 관계가 지구(地球)의 그것보다 크다고는 할지나, 그렇다고 태양(太陽)만이 우주(宇宙)의 생명(生命)이요, 지구(地球)는 우주(宇宙)의 생명(生命)에 관계가 전무하다고는 못 할지라. 또 태양계(太陽系)에 있어서는 태양(太陽)이 중심(中心)이로되, 무궁대(無窮大)한 전우주(全宇宙)에 대하여는 태양(太陽) 그 물건도 한 티끌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라. 이와 같이 사람의 생명(生命)도 결코 일의무(一義務)나 일도덕률(一道德律)을 위하여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요, 인생(人生)의 만반 의무(萬般義務)와 우주(宇宙)에 대한 만반 의무(萬般義務)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충(忠)이나, 효(孝)나, 정절(貞節)이나, 명예(名譽)가 사람의 생명(生命)의 중심(中心)은 아니니, 대개 사람의 생명(生命)이 충(忠)이나 효(孝)에 재함이 아니요, 충(忠)이나 효(孝)가 사람의 생명에서 출함이라. 사람의 생명(生命)은 결코 충(忠)이나 효(孝)나의 하나에 속한 것이 아니요, 실로 사람의 생명(生命)이 충, 효, 정절, 명예 등(忠, 孝, 貞節, 名譽 等)을 포용(包容)하는 것이 마치 대우주(大宇宙)의 생명(生命)이 북극성(北極星)이나 백랑성(白狼星)이나 태양(太陽)에 재함이 아니요, 실로 대우주(大宇宙)의 생명(生命)이 북극성(北極星)과 백랑성(白狼星)과 태양과 기타 큰 별, 잔 별과 지상(地上)의 모든 미물(微物)까지도 포용(包容)함과 같다.
사람의 생명(生命)의 발현(發現)은 다종다양(多種多樣)하니, 혹 충(忠)도 되고 효(孝)도 되고 정절(貞節)도 되고, 기타 무수무한(無數無限)한 인사현상(人事現象)이 되는 것이라. 그 중에 무릇 민족(民族)을 따라, 혹은 국정(國情)을 따르고, 혹은 시대(時代)를 따라 필요성이 무수무궁(無數無窮)한 인사현상중(人事現象中)에서 특종(特種)한 것 일 개(一個)나 또는 수 개(數個)를 취하여 만반 인사행위(萬般人事行爲)의 중심(中心)을 삼으니 차 소위(此所謂) 도(道)요, 덕(德)이요, 법(法)이요, 율(律)이라. 무릇 사회적 생활(社會的 生活)을 완성(完成)하려면 그 사회(社會)의 각원(各員)이 그 사회(社會)의 도덕 법률(道德法律)을 권권복응(卷卷服膺)함이 마땅하되 그러나 결코 이는 생명(生命)의 전체(全體)는 아니니, 생명(生命)은 하여(何如)한 도덕 법률(道德法律)보다도 위대(偉大)한 것이라. 그러므로 생명(生命)은 절대(絶對)요, 도덕 법률(道德法律)은 상대(相對)니, 생명(生命)은 무수히 현시(現時)의 그것과 상이(相異)한 도덕(道德)과 법률(法律)을 조출(造出)할 수 있는 것이라. 이것이 형식이가 배워 얻은 인생관(人生觀)이라. 그러므로 영채가 정절이 깨어짐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려 함은 효(孝)와 정절(貞節)이라는 일도덕률(一道德律)을 인생인 여자(女子)의 생명(生命) life의 전체(全體)로 오인(誤認)한 것이라 하였다. 효(孝)와 정절(貞節)이 현시(現時)에 있어서는 여자의 심중되는 덕(德)이라.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여자인 인생(人生)의 생명(生命)의 소산(所産)이요, 일부분(一部分)이라 하였다. 영채는 과연 부모에게 대하여 효(孝)하지 못하였다. 지아비에게 대하여 정(貞)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도 자기의 의지(意志)로 그러한 것이 아니요, 무정한 사회(社會)가 연약한 그로 하여금 그리하지 아니하지 못하게 한 것이라. 설혹 영채가 자기의 의지(意志)로 효(孝)와 정(貞)에 대하여 생명(生命)의 의무(義務)를 다하지 못하였다 하자. 그러나(그렇다) 가정하더라도 영채는 생명(生命)을 끊을 이유가 없다. 효와 정은 영채의 생명의 의무 중에 둘이니, 설혹 중요하다 하더라도 부분(部分)은 전체(全體)보다 작으니라. 이 두 의무는 실패(失敗)하였다 하더라도 아직도 영채의 생명에는 백천무수(百千無數)의 의무가 있다. 그의 생명에는 아직도 충(忠)도 있고, 세계(世界)에 대한 의무도 있고, 동물(動物)에 대한 의무도 있고, 산천(山川)이나 성신(星辰)에 대한 의무도 있고 부처에 대한 의무도 있다. 이렇게 무수한 의무를 가진 귀중한 생명을 다만 두 가지―비록 중하다 하더라도, 또 부득이한 것인데―를 위하여 (끊으려 하는 영채의 행위는) 결코 ‘옳다’고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순결(純潔)하고 열렬(熱烈)한 사람이 자기(自己)의 중심적 의무(中心的 義務)를 생명으로 삼음은 또한 인생(人生)의 자랑이라 하였다.
형식은 이론(理論)으로는 영채의 행위를 그르다 하면서도 정(情)으로는 영채를 위하여 울지 아니치 못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영채를 ‘낡은 여자’라 하고, 다시 형용사를 붙여서 순결 열렬(純潔熱烈)한 구식 여자(舊式女子)라 하였다. 그러나 우선은 이번 영채의 행위는 절대적(絶對的)으로 선(善)하다 한다. 하나는 영문식(英文式)이요, 하나는 한문식(漢文式)이로다.

무정 - 05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