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066장

차는 지금 신막 남천역을 지나 경의 철도 중에 제일 산이 많은 옛날 금천 큰고개 근방으로 달아난다. 초생달은 벌써 넘어가고 창 밖은 캄캄하다. 달빛의 없는 것이 도리어 산들의 모양을 보기에는 편하다. 하늘과 산과의 경계는 굵은 붓으로 되는 대로 구불구불하게 그린 곡선(曲線) 모양으로 아주 분명하게 보인다. 왈칵왈칵 하는 찻바퀴 소리 사이로 산 강물이 조약돌 많은 여울로 굴러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따금 기관차 굴뚝으로 나오는 불빛에 조고마한 산골짜기에 초가집 두어 개가 번적 보이고 혹 오랜 가물에 얼마 아니 되는 물이 가기 싫은 듯이 흘러가는 산강의 한 토막도 보인다. 차가 산모퉁이를 돌아설 때에 저편 컴컴한 속에 조고마한 불빛이 반작반작한다. 그 불빛이 차가 달아남을 따라 깜박깜박 있다가 없다가 함은 아마 잎이 무성한 나무에 가리워짐인 듯, 그 불은 꽤 오랫동안 형식의 차창에서 보인다. 형식은 물끄러미 그 불을 본다. 저 불 밑에는 누가 앉아서 무엇을 하는고. 가난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잠들여 놓고 혼자 일어나 지아비와 아이들의 누더기를 깁는가. 잘 보이지 아니하는 눈으로 바늘구멍을 찾지 못하여 연방 불을 돋우고 눈을 비비는가. 그러다가 ‘아아 늙었구나!’ 하고 깁던 누더기에 굵은 눈물을 떨구는가. 그때에 아랫목에서 자던 앓는 어린아이가 꿈에 놀라서 우는 것을 껴안고 먹은 것이 없어서 나지도 아니하는 젖을 물리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또는 앓는 외아들을 가운데 놓고 늙은 내외가 자리 위에 서서 번갈아 아들의 몸을 만지고 번갈아 울고 위로하면서 마음속으로 ‘하느님 내려다봅소서’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형식은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자기 부모를 생각하였다. 어머니는 아직 젊었으나 아버지는 오십이 넘었으므로, 자기가 조곰이라도 병이 나면 그 병이 낫기까지 목욕재계하고 자기의 곁에서 밤을 새우던 것과, 자기가 혹 눈을 뜨면 아버지는 자기의 눈을 보고 그 아들이 눈을 뜨는 것이 무한히 기쁜 듯이 빙그레 웃으며 자기의 손을 잡던 것과, 아직 삼십이 다 못 된 자기의 어머니는 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앉은 대로 졸던 것이 생각이 난다. 형식은 잠깐 추연하다가 다시 그 불을 본다. 천지가 온통 캄캄한 중에 오직 불 하나가 반작반작하는 것과, 세상이 다 잠을 다 깊이 들었을 때에 그 불 밑에 혼자 깨어 있는 사람을 생각하매 형식은 그것이 마치 자기의 신세인 듯하였다. 차가 또 어떤 산모퉁이를 돌아서매 그 불은 그만 아니 보이게 되고 말았다. 형식은 서운한 듯이 머리를 창으로 끌어들였다. 차실에 같이 탄 사람들은 다 깊이 잠이 들었다. 바로 자기의 맞은 편에 누운 어떤 노동자 같은 소년이 추운 듯이 허리를 구부린다. 형식은 얼른 차창을 닫고 자기가 깔고 앉았던 담요로 그 소년을 덮어 주었다. 이 소년은 아마 어느 금광으로 가는지 흙 묻은 무명 고의를 입고 수건을 말아서 머리를 동였다. 머리는 언제 빗었는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뭉쳐지고 귀밑과 목에는 오래 묵은 때가 껴 있다. 역시 조고마한 흙물 묻은 보퉁이로 베개를 삼았는데 그 보퉁이를 묶은 종이로 꼰 노끈이 걸상 밑으로 늘어졌다. 형식은 그 노끈을 집어 보퉁이 밑에 끼웠다. 소년의 굵은 베로 만든 조끼 호주머니에는 국수표 궐련갑(菊水票卷煙匣)이 조곰 보이고 그 속에는 물부리가 넓적하게 된 궐련이 서너 개나 보인다. ‘아끼는 궐련이로구나’ 하고 형식은 빙그레 웃으면서 자기의 ‘조일(朝日)’을 만져 보았다. 그러고 담배를 붙일 생각이 나서 한 대를 내었다. 형식은 그 궐련에 불을 붙여 길게 빨았다. 그때에 담배 맛은 특별하였다.
형식은 다시 차실을 돌아보았다. 어떤 일본 부인이 잠을 깨어 정신 없이 사방을 둘러보고 두어 번 머리와 목을 만지며 무엇을 찾는 듯이 기웃기웃하더니 도로 신현대(信玄袋)에 엎디어 잠이 든다. 형식도 내일에 곤할 것을 생각하고 한참 자리라 하여 수건을 창문턱에 접어 놓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형식의 정신은 더욱 쇄락할 뿐이요, 암만하여도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형식은 그래도 잠이 들까 하고 눈을 감은 대로 찻바퀴 소리를 세었다. 형식의 정신은 마치 풍랑이 침식한 바다 모양으로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 형식의 머리에는 영채와 선형과 노파와 배학감과 이희경과 또 칠성문 밖에서 보던 노인과 박선생의 무덤과 계향과…… 이러한 것들이 순서도 없이 번쩍번쩍 떠나온다. 형식은 눈을 감은 채로 그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 사람들은 혹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혹 성난 듯이 입을 내어밀고, 눈을 흘깃흘깃하기도 하고, 혹 나무로 새겨 놓은 듯이 시치미떼고 나서기도 한다. 더구나 영채의 모양이 오래 보이고 또 자주 보인다. 형식은 곁에 놓인 가방을 생각하였다. 그 속에 있는 영채의 편지와 지환과 칼이 눈에 보인다. 형식은 오싹 소름이 끼치며 번쩍 눈을 떴다. 아― 내가 잘못함이 아닌가. 내가 너무 무정함이 아닌가. 내가 좀더 오래 영채의 거처를 찾아야 옳을 것이 아닌가. 설사, 영채가 죽었다 하더라도, 그 시체라도 찾아보아야 할 것이 아니던가. 그러고 대동강가에 서서 뜨거운 눈물이라도 오래 흘려야 할 것이 아니던가. 영채는 나를 생각하고 몸을 죽였다. 그런데 나는 영채를 위하여 눈물도 흘리지 않아. 아― 내가 무정하구나, 내가 사람이 아니로구나 하였다. 남대문을 향하고 달아나는 차를 거꾸로 세워 도로 평양으로 내려가고 싶다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마음은 평양으로 끌리면서 몸은 남대문에 와 내렸다.

무정 - 06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