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068장

말이 좀 곁가지로 들어가지마는, 이 기회를 타서 형식의 지나간 동안 교사생활을 좀 말할 필요가 있다. 사 년간 형식의 경성학교 교사 생활은 일언이폐지하면 사랑과 고민(苦悶)의 생활(生活)이었다.
형식이 이십 년간 갇히고 주렸던 사랑은 교사가 되어 여러 소년을 접하게 되며(되매), 마치 눈에 가리워졌던 풀의 움이 봄바람을 타서 쑥 나오는 모양으로 나오기를 시작하였다. 부모의 사랑이나 형제의 사랑이나 동무의 사랑도 맛보지 못하고, 하물며 여자에게 대한 사랑은 꿈도 꾸어 보지 못한 형식의 사랑은 사리에 밀려들어 오는 밀물 모양으로 경성학교의 사백 명 어린 학생을 덮었다. 그가 일찍 일기(日記)에,
‘너희는 나의 부모요, 형제요, 자매요, 아내요, 동무요, 아들이로다. 나의 사랑을 나의 전 정신(全精神)을 점령한 것은 너희로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가 다 마르도록, 이 살이 다 깎이도록, 이 뼈가 다 휘도록 일하고 사랑하마’ 한 구절은 형식의 거짓없는 정을 말한 것이다. 형식은 아침마다 학교 문을 들어서서 학생들이 노니는 양을 보면 기쁘고, 시간마다 강단에 서서 학생들이 자기를 보고 자기의 말을 듣는 양을 보면 기쁘고, 밤에 혼자 자리에 누워 학생들의 놀던 모양과 배우던 모양을 생각하면 기뻤다. 그래서 어찌하면 하나라도 학생들을 더 가르쳐 줄까, 어찌하면 그네의 행실을 아름답게 만들고, 어찌하면 그네의 정신을 깨우쳐 줄까 하여 자기가 아는 바 모든 것을 말하고, 할 수 있는 바 모든 방법을 다하였다. 그래서 학생들이 토론회를 할 때에 자기의 가르친 말을 끌어 쓴다든가 무슨 일을 할 때에 자기가 시켜 준 어느 방법을 쓰는 것을 보면 형식은 더할 수 없이 기뻐하였다.
이렇게 지나간 사 년간의 형식의 경력과 시간의 대부분은 전혀 학생들을 위하여 소비되었다. 그 때문에 형식은 얼마큼 신경도 쇠약되고 몸도 약하게 되었다. 자기도 그런 줄을 안다. 그러나 순전히 자기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사년급 학생들을 대할 때에는 마치 봄부터 여름내 땀을 흘리고 고생하던 농부가 가을에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논과 밭을 보고 깨닫는 듯하는 기쁨과 만족을 깨닫는다. 형식(의 생각)에 사년급 학생의 지식의 대부분과 아름다운 생각과 말과 행실의 대부분은 다 자기의 정성으로 힘쓴 결과려니 한다. 과연 형식은 조고마한 기회라도 놓치지 아니하고 자기의 가진 지식과 경험과 감상과 재미있는 이야기까지도 들려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사년급 학생을 대하여도 별로 할 말이 없으리만큼 자기가 가진 바를 온통 나눠 주었다. 형식은 교과서를 가르치고 남는 시간을 반드시 새롭고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로 채웠다. 형식이가 독서를 하는 이유의 하나는 이 학생들에게 알려 주려는 욕심이었다. 그러고 학생들도 형식의 말을 재미있게 들었다. “또 더 해주셔요” 하고 형식에게 청하기까지도 하였다. 이렇게 학생들이 청하는 것을 보고는 형식은 더욱 만족하였다. 무론 여러 학생 중에는 형식의 하는 이야기를 귀찮게 여기는 자도 있고, 형식이 한창 정성으로 이야기할 때에 일부러 한눈도 팔며 공책에 붓장난을 하는 자도 있었으나 형식의 보기에 대부분은 자기의 말을 흥미있게 듣는 듯하였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형식에게서 받은 감화와 얻은 지식과 쾌락도 적지 아니하였다. 여러 교사들 중에 학생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기로는 남들도 형식이라고 허하고 형식 자신도 그렇게 확신하였다.
그러나 교사들은 형식의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다지 좋은 줄로도 생각지 아니하고 어떤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생기게 하느니, 학생들에게 좋지 못한 소설을 읽어 주어 학생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느니 하고 비방도 한다.
이러한 비방도 아주 까닭이 없음은 아니라. 형식은 항상 학생들에게 될 수 있는 대로 자유를 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학교 당국도 될 수 있는 대로는 학생의 의사를 존중하기를 주장한다. 더구나 처음 형식이가 이 학교에 교사로 왔을 때에는 교장과 학감이 극히 전제를 숭상하는 인물이 되어서 학생들은 선생에게 대하여 감히 한마디도 자기네의 의사를 표하지 못하였고, 혹 다만 한마디라도 학교의 명령이나 교사의 말에 대하여 비평을 한다든가 반대를 하는 자가 있으면 학생 일동의 앞에서 엄혹하게 책망을 한 후에 혹은 정학도 시키고 심하면 출학까지도 하였었다. 그래서 자유사상을 품은 형식은 여러 번 의견도 충돌하였었다. 형식은 학생들 앞에서,
‘학도에 대하여 불만한 일이 있으면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옳소. 정당한 일을 학교가 부정당하게 여길 때에는 반항을 하여도 옳소.’ 이러한 위험한 말도 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배학감이, 이번 학생의 소동도 형식의 충동이라 함이 아주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라.
또 형식은 삼사년급 학생들에게 은연중 문학을 장려하였다. 그래서 학생 중에는 혹 소설도 보며, 철학에 관한 서적도 보며, 잡지도 보는 자가 생기고, 그 중에는 가장 문학자인 체, 사상가인 체, 철인(哲人)인 체하여 무슨 큰 생각이나 하는지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학생도 몇 사람이 생기고, 또 그러한 학생들도 다른 교사들을 아주 정신생활(精神生活)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주 유치한 사람들이라고 비웃기도 한다. 형식의 보기에 이는 학생들의 진보함이라 기쁜 일이언마는 다른 교사들 보기에 이는 학생들이 타락함이요 주제넘게 됨이었다. 교사들뿐 아니라 학생 중에도 이희경 일파가 글자 작은 어려운 책을 들고 다니는 것과 그달에 발행한 잡지를 들고 다니는 것을 비웃었다.

무정 - 06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