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오던 모양으로 영채의 자리에 돌아왔다. 영채는 그제야 겨우,
“감사합니다” 하였다. 부인은 앉으려 하다가 다시 자기의 자리로 가서 그 소년과 무슨 말을 하더니 가방 속에서 네모난 종잇갑을 내어들고 와서 영채의 맞은편 걸상에 앉으며,
“이것 좀 잡수셔요” 하고 그 종잇갑의 뚜께를 연다. 영채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구멍이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를 끼인 것이다. 영채는 무엇이냐고 묻기도 어려워서 가만히 앉았다. 부인은 슬쩍 영채의 눈을 보더니, 속으로 ‘네가 이것을 모르는구나’ 하면서 영채에게 먹기를 권하며,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자기 먼저 하나를 집어먹으며, “자 잡수셔요” 한다.
“평양 갑시다(갑니다)” 하고 영채도 한쪽을 집어서 그 부인이 먹는 모양으로 먹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먹는 것인지 몰랐었다.
“댁이 평양이시야요?” 하고 부인은 또 하나를 집는다. 영채는 어떻게 대답할지를 몰랐다. 나도 집이 있나 하였다. 그러나 집이 있다 하면 노파의 집이다 하여 고개를 돌리며,
“녜, 평양 있다가 지금 서울 와 있어요” 하고 영채는 집었던 것을 다 먹고 가만히 앉았다. “자, 어서 잡수셔요” 하고 부인이 집어 줄 때에야 또 하나를 받아 먹었다. 별로 맛은 없으나 그 새에 낀 짭짤한 고기 맛이 관계치 않고 전체가 특별한 맛은 없으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운치 있는 맛이 있다 하였다. 부인은 또 한쪽을 집어 안팎 옆을 한번 뒤쳐 보며,
“그런데 방학이 되었어요?”
나를 여학생으로 아는구나 하고 한껏 부끄러웠다. 그러고 이 일본 부인이 어떻게 이렇게 조선말을 잘하나 하다가 너무도 조선말을 잘함을 보고 옳지 일본 가 있는 조선 여학생이로구나 하면서,
“아니야요. 잠깐 다니러 갑니다. 저는 학교에 아니 다녀요.”
“그러면 벌써 졸업하셨어요. 어느 학교에 다니셨어요. 숙명이요, 진명이요?”
“아무 학교에도 아니 다녔어요.”
이 말에 그 부인은 입에 떡을 문 채로 씹으려고도 아니 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영채를 본다. 그러면 이 여자는 무엇일까 하였다. ‘남의 첩’이라는 생각도 난다. 학교에 아니 다녔단 말에 다소 경멸하는 생각도 나나 또 그것이 어떤 계집인지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好奇心)도 난다. 그러나 어떻게 물어 보아야 할지를 한참 생각하다가,
“그러면 평양에는 친척이 계셔요?”
영채도 어떻게 대답을 할 것인지 모른다. 오늘 저녁이면 죽어 버리는 몸이요, 또 이 부인이 이처럼 친절하게 하여 주니 자초지종을 있는 대로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나 그래도 말을 내기가 부끄럽기도 하고 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를 몰라 떡을 든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잠자코 앉았다. 부인도 가만히 앉았다. ‘이 여자에게 무슨 비밀이 있구나’ 하매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다. 그러나 영채의 불편하여 하는 것을 보고 말끝을 돌려,
“제 집은 황주야요. 동경 가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서 돌아옵니다. 쟤는 제 동생이구요.”
영채는 다만, “녜―” 하고 그 소년을 보았다. 소년도 기대어 앉아서 눈을 꿈벅거리며 여기를 쳐다보다가 영채의 눈과 마주치매 눈을 돌려 방(창) 밖을 내다본다. 둥그스름하고 살이 풍후한 얼굴에 눈이 큰 것과 눈썹이 긴 것이 얼른 눈에 뜨인다. 영채는, 사랑스러운 얼굴이다, 남매가 잘 닮았다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말이 없고 서로 이따금 마주보기만 한다. 영채는 ‘내게도 저런 동생이 있었으면’ 하였다. 그러고 동경 유학하는 그의 신세를 부럽게도 여겼다. 또 나는 죽는다 하였다. 나는 왜 이렇게 박명한고, 나는 어찌하여 일생을 눈물로 보내다가 죽게 태어났는고 하였다. 차는 간다. 해도 간다. 내가 죽을 시간은 가까워 온다 하고 자기의 손과 몸을 보았다. 그러고 나오는 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영채는 눈물을 감추려 하였으나 참으려면 참을수록 흐득흐득 느껴 가며 눈물이 나온다. 영채는 마침내 자기의 걸어앉은 무릎 위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그 여학생은 영채의 곁으로 옮아앉아 영채를 안아 일으키면서,
“여봅시오, 왜 그러셔요?”
영채는 자기의 가슴 밑으로 들어온 그 여학생의 손을 꼭 쥐어다가 자기의 입에 대며 엎딘 채로,
“형님, 감사합니다. 저는 죽으러 가는 몸이야요. 아아, 감사합니다” 하고 더 느낀다.
“에?” 하고 여학생은 놀라, “그게 무슨 말씀이야요? 왜, 무슨 일이야요. 말씀을 하시지요. 힘있는 대로는 위로하여 드리지요. 왜 죽으려고 하셔요. 자 울지 말고 말씀합시오. 살아야지요. 꽃 같은 청춘에 즐겁게 살아야 하지요. 왜 죽으려 하셔요?” 하고 수건으로 영채의 눈물을 씻는다. 영채는 번히 눈을 떠서 여학생을 본다. 여학생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활발한, 남자 같은 사람에게도 눈물이 있는 것이 이상하다 하였다. 그러고 영채에게는 그 여학생이 정다운 생각이 간절하게 된다. 영채의 눈물은(눈물을) 씻은 수건에는 영채의 입술에서 흐른 피가 묻었다. 여학생은 가만히 그 피와 영채의 얼굴을 비교하여 본다. 불쌍한 생각이 간절하여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