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부글부글 끓는 머리를 가지고 영채의 차실에서 나왔다. 우선이가 지켜 섰다가 형식의 어깨를 툭 치며,
“영채 씨가 울데그려.”
형식은 우선의 손을 잡으며,
“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왜, 무슨 일이 났나. 영채 씨가 바가지를 긁던가 보이그려…… 요― 호남자!”
“아니어! 그렇게 농담으로 들을 것이 아닐세…… 참, 어쩌면 좋아?”
“아따, 걱정도 많기도 많아…… 부산 가서 배 타고, 마관 가서 차 타고, 횡빈 가서 배 타고, 상항 가서 내리고 하면 그만이지 걱정이 무슨 걱정이어!”
형식은 원망스러이 우선의 얼굴을 보고 서서 무슨 생각을 하더니,
“나는 미국 가기를 중지할라네.”
“응?” 하고 우선도 놀라며, “어째?”
“미국 가기를 중지할 테여…… 그것이 옳은 일이지…… 응, 그리할라네” 하면서 우선의 손을 놓고 차실로 들어가려 한다. 우선은 손을 잡아 형식을 끌어당기며,
“자네 미쳤단 말인가. 이리 좀 오게.”
형식은 멀거니 섰다.
“자네 지금 정신이 혼란되었네. 미국 가기를 중지한다는 것이 무슨 소리여?”
“아니 저편은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려고 하는데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선형 씨한테 이 뜻을 말하고 약혼을 파하겠네…… 그것이 옳은 일이지.”
“그러면 영채하고 혼인한단 말이지?”
“응, 그렇지! 그것이 옳지!”
“영채는 자네와 혼인을 한다던가.”
“그런 말은 없어.”
“만일 영채가 자네와 혼인하기를 싫다 하면 어쩔 터인가.”
형식은 한참 생각하더니,
“그러면 일생 혼인 말고 지내지…… 절에 가서 중이 되든지.”
우선은 마침내 껄껄 웃으며,
“지금 자네가 좀 노보세(上氣)했네. 참 자네는 어린내일세. 세상이 무엇인지를 모르네그려. 행여 꿈에라도 그런 생각 내지 말고 어서 미국이나 가게.”
“그러면 저 사람을 버리고?”
“버리는 것이 아니지. 일이 이미 그렇게 되었으니까. 이제 그런 생각을 하면 무엇 하나. 또 영채 씨도 동경에 유학도 하게 되었고 하니까 피차에 공부나 잘하고 장래에 서로 형제삼아 지내게그려. 그런 어림없는 미친 소리는 다 집어치고……” 하면서 형식의 등을 퉁 하고 때린다. 팔에 붉은 헝겊 두른 차장이 지나가다가 두 사람을 실척 본다.
형식은 자기의 자리에 돌아와 뒤에 몸을 기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선형은 조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린 듯이 기대어 앉았다.
형식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의문 하나가 일어난다.
대체 자기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선형인가, 영채인가. 영채를 대하면 영채를 사랑하는 것 같고, 선형을 대하면 선형을 사랑하는 것 같다. 아까 남대문에서 차를 탈 때까지는 자기는 오직 선형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친 듯하더니 지금 또 영채를 보매, 선형은 둘째가 되고 영채가 자기의 사랑의 대상인 듯도 하다. 그러다가 또 앞에 앉은 선형을 보매 ‘이야말로 내 아내, 내 사랑하는 아내’라는 생각도 난다. 자기는 선형과 영채를 둘 다 사랑하는가. 그렇다 하면 동시에 두 사람을 다 같이 사랑할 수가 있을까. 남들이 하는 말을 듣거나, 자기가 지금껏 생각하여 온 바로 보건대, 참된 사랑은 결코 동시에 두 사람 이상에 향할 수 없는 것이어늘, 지금 자기의 마음은 어떠한 상태에 있나. 아무렇게 해서라도, 어떠한 표준을 세워서라도 형식은 선형과 영채 양인 중에 한 사람을 골라야 하겠다.
오래 생각한 후에 형식은 이러한 결론에 달하였다.
자기가 선형을 사랑하는 것도 결코 뿌리 깊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는 선형의 얼굴이 어여쁜 것과 태도가 얌전한 것과 학교에서 우등한 것과 부자요 양반집 딸인 것밖에 아무것도 선형에게 관하여 아는 것이 없다. 나는 아직도 약혼한 지금까지도 선형의 성격(性格)을 알지 못한다. 무론 선형도 자기의 성격을 알지 못한다. 서로 이해(理解)함이 없이 참사랑이 성립될 수 있을까. 내 영혼은 과연 선형을 요구하고, 선형의 영혼은 과연 나를 요구하는가. 서로 만날 때에 영혼과 영혼이 마주 합하고, 마음과 마음이 마주 합하였는가.
일언이폐지하면 자기와 선형 사이에는 과연 칼로 끊지 못하고 불로도 끊지 못할 사랑의 사실이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매 형식은 실망함을 금치 못한다. 자기는 비록 선형에게 이 모든 것을 구하였다 하더라도 선형은 결코 자기에게 영혼도 보이지 아니하고 마음도 주지 아니하였다. 어찌 생각하면 선형에게는 자기에게 줄 영혼과 마음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부모의 명령과 세상의 도덕에 눌려 하릴없이 자기를 따라오는지도 모르겠다. 무론 일찍 선형이가 자기 입으로 “녜” 하고 대답은 하였다. 그러나 그 대답이 과연 자각(自覺) 있게 나온 대답일까.
그러면 자기가 선형에게 대한 사랑은, 즉 항용 사나이들이 고운 기생 같은 여성의 색에 취하여 하는 사랑과 다름이 있을까. 자기의 사랑은 과연 문명의 세례를 받은 전인격적(全人格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