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저 물 보셔요!” 하고 병욱이가 가시 돋은 철사에 배를 대고 허리를 굽히며 소리를 친다. 다른 세 사람도 속으로는 ‘저 물 보게’ 하면서도 아무도 입 밖에 말을 내지는 아니한다.
“저것 보게. 저기 저 집들이 반이나 잠겼습니다그려!” 하고 마산선으로 갈려 나가는 길가에 있는 초가집들을 가리킨다. 과연 대단한 물이로다. 좌우편 산을 남겨 놓고는 온통 시뻘건 흙물이로다. 강 한가운데로 굼실굼실 소용돌이를 쳐가며 흘러내려가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그 물들이 좌우편에 늘어선 산굽이를 파서 얼마 아니 되면 그 산들의 밑이 빠져 나갈 것 같다.
길이 좁아서 미처 빠지지를 못하여 우묵우묵한 웅커리(웅덩이)라는 웅커리는 하나도 남겨 놓지 않고 쓸어들여서 진을 치고 앞선 물들이 다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길을 잃은 물은 사람 사는 촌중에까지 침입하여 사람들을 다 내어몰고 방 안, 부엌, 벽장 할 것 없이 온통 점령을 하고 말았다. 그러고 집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아이를 업고 늙은이를 이끌고 높은 데 높은 데를 찾아 산으로 기어오른다. 사람들이 (중히 여기고) 중히 여기어 남을 주기는커녕 잠깐 만져만 보자고 하여도 눈이 벌개지며 “못 한다” 하던 모든 세간을 그 벌건 물들이 이리 둥실 저리 둥실 띄워 가지고 왔다갔다하다가 물결에 강 한복판으로 집어던져 빙글빙글 곤두박질을 하며 한정없는 바다로 흘려내려 보낸다.
사람들이 여름내에 애써서 길러 놓은 곡식들도 그 붉은 물결 속에서 부다끼고 또 부다끼어 그 약한 허리가 부러지는 것도 있을 것이요, 그 부드러운 뿌리가 끊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라. 장차 누렇게 열매를 맺어 가을밤 골안개에 무거운 고개를 숙이려 하던 벼의 꽃도 다 말이 못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온 땅은 전혀 붉은 물의 지배하(支配下)에 들어가고 말았다.
비는 그쳤건마는 하늘에는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검은 구름장이 뭉글뭉글 떠돈다. 부리나케 동편을 향하고 달아나다가는 무슨 생각이 나는지 또 서편을 향하고 몰려간다. 이따금 참다못한 듯이 붉은(굵은) 빗방울이 우수수 떨어진다.
벌거벗은 높은 산에는 갑자기 된 폭포와 시내가 거꾸로 매어달린 듯이, 마치 검은 바탕에다가 여기저기 되는 대로 흰 줄을 그어 놓은 것 같다. 그 개천들이 벌거벗은 산들의 살을 깎고, 뼈를 우귀어 가지고 내려오는 소리가 무섭게 흘러가는 강물 소리와 합하여 웅대한 합주(合奏)를 듣는 것 같다.
땅은 목말랐던 판에 먹을 수 있는 대로 실컷 물을 먹어서 무럭무럭하게 되었다. 마치 지심(地心)까지 들여져 젖을 것 같다. 하늘 위이며 땅 밑이 온통 물 세상이로다. 이 물 세상에 서서 사람들은 ‘어찌 되려는고’ 하고 하늘만 우러러본다. 병욱은 다시,
“이렇게 물이 많이 나서 흉년이나 아니 들까요?” 하고 형식을 본다. 형식도 우적우적 높은 땅으로 기어오르는 사람들을 보고 섰다가 고개를 병욱에게로 돌리며,
“글쎄올시다. 이제라도 곧 비가 그쳤으면 좋으련마는 이제 하루만 더 오면 연사는 말이 아니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을 하는 동안에 세 처녀는 일제히 형식의 입을 바라본다. 그네의 속에는 개인(個人)을 뛰어난 일종의 근심과 두려움이 찬다. ‘큰물’, ‘흉년’ 하는 생각과, 물소리와 뭉굴뭉굴하는 구름과, 집을 잃고 높은 땅으로 기어오르는 사람은 그네로 하여금 개인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공통한 생각…… 즉 사람으로 저마다 가지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선형도,
“이제 비가 그치면 오늘 안으로 이 물이 다 찔까요?” 하고 형식을 본다.
“아마, 내일 아침까지는 갈걸요” 한다.
“상류(上流)에 비가 아니 오면 곧 찌지마는 상류에 비가 오면……” 하고 영채가 연전 평양은 비도 아니 오는데 대동강이 범람하던 생각을 한다.
“평양 시가에도 물이 들어올 때가 있나요?” 하고 선형이가 영채를 보며 묻는다.
“들어오구말구요. 성내에는 별로 들어오는 일이 없지마는 외성에는 흔히 들어옵니다. 그저께도 외성 신시가로 배를 탔다구(타구) 다녔는데요” 하고 선형의 눈을 실적 본다. 선형이 얼른 눈을 피하였다. 병욱은 한참 듣다가 빙긋 웃으며 속으로, ‘너희들이 잘 이야기를 한다’ 하였다. 영채는 병욱의 웃는 것을 보고 한 걸음 병욱에게 가까이 가며 남에게 아니 보이게 가만히 병욱의 손을 잡는다. 병욱은 영채의 손을 꼭 쥐어 주었다. 네 사람은 한참이나 말없이 저 보고 싶은 데를 멀거니 보고 있었다. 그러나 네 사람은 공통한 생각을 버리고 각각 제가 되었다. 그러고 본즉 여기 서서 구경할 재미도 없어졌다. 그래도 그냥 우두커니 섰다가 의논한 듯이 네 사람은 슬몃 발을 돌려 거기서 십여 보가 다 못 되는 여관으로 향하였다. 하녀들과 반토(지배인)가 “이랏샤이(어서 오십시오)“를 부르고 네 사람은 이층 북편 끝 하치조마(八疊間)로 인도한다. 지나가면서 보건대 각 방에는 손님이 다 찬 모양이요, 모두 무슨 이야기들을 한다. 여관은 물난 덕에 매우 흥성흥성하게 되었다. 네 사람이 각각 방석을 당기어 깔고 앉자마자 소나기가 (쏴 하고) 여관의 함석 지붕을 때린다.
“아이구, 저 집 잃은 사람들을 어찌해” 하고 세 처녀가 일시에 얼굴을 찌푸린다. 비는 좍좍 퍼붓는다. 방 안은 적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