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인력거 위에서 자기가 첫 번째 평양에 오던 생각을 하였다. 머리는 아직 깎지 아니하여 부모상으로 흰 댕기를 드리고, 감발을 하고, 어느 봄날 아침에 칠성문으로 들어왔다. 칠성문 안에서 평양 시가를 내려다보고 ‘크기는 크구나’ 하였다. 그때에 형식은 열한 살이라. 그러나 평양이란 이름과 평양이 좋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요, 평양이 어떠한 도회인지, 평양에 모란봉 청류벽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형식은 그때에 사서와 사략과 소학을 읽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학교라는 것도 없었으므로 조선 지리나 조선 역사를 읽어 본 적이 없었다. 형식은 생각하였다. ‘문명한 나라 아이들 같으면 평양의 역사와 명소와 인구와 산물도 알았으리라.’ 그때에 형식은 대동문 거리에서 처음 일본 상점을 보았다. 그러고 그 유리창이 큰 것과 그 사람들의 옷이 이상한 것을 보고 재미있다 하였다. 형식은 갑진년에 들어오던 일본 병정을 보고 일본 사람들은 다 저렇게 검은 옷을 입고, 빨간 줄 두른 모자를 쓰고 칼을 찼거니 하였었다. 그래서 대동문 거리로 오르내리며 기웃기웃 일본 상점을 보았다. 어떤 상점에는 성냥과 석유 상자가 놓였다. 형식은 아직도 그렇게 많은 성냥을 보지 못하였었다. 그래서 ‘옳지, 성냥은 다 여기서 만드는구나’ 하고 고개를 까닥까닥하였다. 또 일본 사람들이 마주앉아서 이야기하고 웃는 것을 보고 ‘어떻게 서로 말을 알아듣는가’ 하고 이상히 여겼다. 형식의 귀에는 모든 말이 다 같은 소리와 같이 들렸음이라. 더욱 형식의 눈에 재미있게 보이는 것은 일본 부인의 머리와 등에 매어달린 허리띠코였다. 형식은 저기다가 무엇을 넣고 다니는고 하였다. 이 의문은 오래도록 풀지 못하였다.
또 형식은 대동문 밖에 나서서 대동강을 보았다. 청천강보다 ‘좀 클까’ 하였다. 그러고 ‘화륜선’을 보았다. 시꺼먼 굴뚝으로 시꺼먼 연기를 피우고 뺑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돛도 아니 달고 다니는 ‘화륜선’은 참 이상도 하다 하였다. 그 ‘화륜선’ 위에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저기 타보았으면’ 하였다.
형식은 ‘물지게가 많기도 하다’ 하였다. 형식의 생장한 촌중에는 그 앞술도 하고 겨울에 국수도 누르는 주막에 물지게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물지게란 주막에 있는 것이어니 하였다. 그러므로 형식은 대동문으로 수없이 많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물지게를 보고 ‘평양에는 주막도 많다’ 하였다. 그러고 ‘평양감사’라는데 평양감사가 어디 있는고 하고 한참이나 평양감사의 집을 찾다가 말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형식은 호로 구녁으로 거리를 내다보며 혼자 싱긋 웃었다. 밀철로가 사람을 가득히 싣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형식의 인력거 곁으로 지나간다.
형식은 또 생각을 잇는다. 그날 종일 평양 구경을 하다가 관 앞 어떤 객주에 들었다. 탕건 쓴 주인이, “너 돈 있니?” 할 때에 형식은 “스무 냥이나 있는데” 하고 자기의 주머니를 생각하면서, “돈 없겠소!” 하고 (‘나도 손님인데’ 하면서 서슴지 아니하고) 아랫목에 내려가 앉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 이튿날이 평양장이라 하여 감발한 황화(荒貨) 장수들이 십여 인이나 형식의 주인에 들었다. 형식은 얼마큼 무서운 생각이 있으면서도 아주 태연한 듯이 벽에 바른 종이의 글을 읽었다. 그러나 밤에 자려 할 때에 같이 있던 이삼 인이 서로 다투어 형식의 곁에서 자려 하였다. 형식은 무서운 마음이 생겨서 방 한편 구석에 말없이 앉아서 그 사람들의 하는 양을 보았다. 그러나 형식의 손에는 목침이 들렸더라. 세 사람은 한참이나 다투더니 그 중에 제일 거무테테하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웃고 형식을 안으며, “얘 나하고 자자. 돈 주께” 하고 형식의 목을 쓸어안으며 입을 맞추려 한다. 형식은 울면서 방 안에 둘러앉은 십여 명을 보았다. 그러나 모두 벙글벙글 웃을 뿐이요 그 중에 한 사람이, “얘, 나하고 자자” 하며 자기의 주머니에서 엽전을 한줌 집어낸다. 형식은 반항하였다. 그러나 그 거무테테한 사람의 구린내 나는 입이 형식의 입에 닿았다. 형식은 머리로 그 사람의 면상을 깨어져라 하도록 들입다 받고 그 사람이 번쩍 고개를 잦기는 틈을 타서 손에 들었던 목침으로 그 사람의 가슴을 때렸다. 그 사람은 얼른 목침을 피하고 일어나면서 형식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형식의 머리를 벽에 부딪친다. 형식은 이를 갈며 울었다. 이때에 저편 구석에 말없이 앉았던 키 큰 사람이 벌떡 일어나 달려오더니 형식의 머리채를 잡은 사람의 상투를 잡아당기며 주먹으로 가슴을 서너 번 때리더니 방바닥에 그 사람을 엎드려 놓고, “이놈! 이 짐승놈?” 하고 발길로 찬다. 여러 사람은 다 놀라 일어났다. 그러나 감히 대어드는 자가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형식은 문득 영채를 생각하였다. 영채와 자기와는 이상하게 같은 운명을 지내어 오는 듯하다 하였다. 그러고 영채가 더욱이 정다워지는 듯함을 깨달았다. 영채는 자기의 아내를 삼아 일생을 서로 사랑하고 지내야 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영채는 살았는가. 살아서 경찰서에 있는가. 또 영채의 편지가 생각나고 아까 대동강을 건너올 때에 생각하던 바를 생각하였다. 그러고 그 편지와 그 언역 쓴 종이를 넣은 가방이 자기의 무릎 위에 놓인 것을 보았다. 그러고 평양경찰서의 집과 문과 그 속에 앉아서 사무를 보는 사람들을 상상하고 영채가 울면서 혼자 앉았는 방과 자기와 노파가 영채의 방에 들어가는 모양을 상상하였다.
인력거가 우뚝 서고 인력거꾼이 호로를 벗긴다. 형식의 앞에는 회칠한 서양제 집이 있다. 문 위에는 ‘平壤警察署(평양경찰서)’라고 대자로 새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