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057장

형식은 가슴이 설렁거리면서 경찰서 문 안에 들어섰다. 사무 보는 책상과 의자가 다 보이고, 저편 유리창 밑에 어떤 흰 정복에 칼도 아니 차고 어깨에 수건을 걸은 순사가 앉아서 신문을 본다. 형식은 아직도 조선 땅에서 경찰서에 와본 적이 없었다. 일찍 동경에서 어떤 경찰서에 불려가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서장과 말하여 본 적은 있었으나 인민이 관청에 오는 자격으로 경찰서에 와본 적은 없었다. 그는 톨스토이의『부활』을 읽어 아라사 경찰서의 모양을 상상할 뿐이었었다. 형식은 얼마큼 불쾌한 생각을 품으면서 모자를 벗고, “여쭈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노파는 형식의 곁에 서서 무서움과 괴로움으로 치를 떤다. 그러나 순사는 그 말을 못 들은 모양. 형식은 좀더 소리를 높여,
“여쭈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 하였다. 그제야 순사가 신문을 든 채로 고개를 돌려 형식과 노파의 얼굴과 모양을 유심히 보더니,
“무슨 일이오?” 한다. 형식이 서장이 오기 전에는 자세히 알 수 없으리라 하면서,
“어저께, 서울서 평양경찰서로 어떤 부인 하나를 보호하여 달라는 전보를 놓았는데요……” 형식의 말이 끝나기 전에 순사가,
“부인?” 한다. 형식과 노파의 생각에는 ‘옳지, 영채가 여기 있는 게로고’ 하였다.
“녜― 부인 하나를 보호하여 달라고 전보를 놓았는데요…… 그래서 지금 어젯밤 차로 내려왔는데요…… 혹 그 부인이 지금 이 경찰서에 있습니까” 하면서 형식은 그 순사의 얼굴을 보았다. 순사는 말없이 신문을 두어 줄 더 읽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곁으로 오면서,
“어떤 부인을 보호하여 달라고 평양경찰서로 전보를 놓았어요?” 하고 형식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듯이 소리를 높여 묻는다. 형식은 얼마큼 실망하였다. 만일 평양경찰서에서 영채를 붙들었으면 저 순사가 모를 리가 없으리라 하였다. 노파도 눈이 둥그래지며 순사에게,
“어떤 모시 치마 적삼 입고 서양 머리로 쪽찐 열팔구 세나 된 여자가 오지 아니하였어요?” 하고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순사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한참이나 고개를 기웃기웃하고 바지에 한 손을 꽂고 책상과 의자 사이를 지나 저편으로 들어가고 만다. 두 사람은 실망하였다. 영채는 평양경찰서에 없구나 하였다. 만일 영채가 여기 없다 하면 어디 있을까. 어저께 넉점에 평양에 내려서 자기의 부친과 월화의 무덤을 보고 그 길로 청류벽으로 나와 연광정 밑에서 물에 뛰어든 것이 아닐까, 그렇다. 영채는 죽었구나 하였다. 노파가 형식의 팔을 잡으며 우는 소리로, “웬일이야요?” 한다. 형식은 울음을 참느라고 입술을 물었다.
“설마 죽기야 하였겠어요. 이제 서장이 오면 알 터이지요” 하고 노파를 위로는 하면서도 자기도 영채가 살았으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그래서 속으로 ‘왜 죽어!’ 하였다. 소학과 열녀전이 영채를 죽였구나 하였다. 만일 자기가 한 시간만 영채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더라도 영채는 죽지는 아니하였으리라 하였다. 형식은 이번에는 소리를 내어, “왜 죽어?” 하였다. 노파는 ‘설마 죽었을라고요’ 하고(하는) 형식의 말에 얼마큼 마음을 놓았다가 ‘왜 죽어?’ 하는 형식의 탄식에 다시 절망이 되었다. 노파는 형식의 손을 꽉 쥐며,
“에그, 이 일을 어째요?” 하고 운다. 그러고 ‘나 때문에 영채가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더욱 노파의 가슴을 찌른다. ‘아까, 꿈자리가 좋지 못하더니’ 하고 꿈꾸던 생각을 한다. 하얀 옷을 입고 물 위에 서서 ‘흥, 생각하니깐 우스워요’ 하다가, 갑자기 얼굴이 무섭게 변하며 입술을 깨물어 자기의 얼굴에 뜨거운 피를 뿜던 것이 생각이 난다. 그러고 그것이 영채의 혼령(魂靈)이 아니던가 하였다. 어저께 해지게 대동강에 빠져 죽은 영채의 혼령이 자기의 꿈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었다. 아아, 영채의 원혼(怨魂)이 밤낮 내 몸에 붙어서 낮에는 병이 되고 밤에는 꿈이 되어 나를 괴롭게 하지나 아니하겠는가 하였다. 자기가 오늘부터 병이 들어 얼마를 신고하다가 마침내 영채에게 붙들려 가지나 아니할까, 또는 장차 서울에 올라가는 길에 영채의 원혼이 대동강 철교를 그 입술을 물어뜯던 모양으로 물어뜯어 자기 탄 기차가 대동강에 빠지지나 아니할까 하였다. 무섭게 변한 영채의 모양이 방금 노파의 앞에 섰는 듯도 하다. 노파는 마침내 울며 형식의 어깨에 얼굴을 비빈다. 형식도 울음을 참으면서 흑흑 느끼는 노파의 등을 만지며,
“울지 마십시오. 이제 서장이 나오면 알지요” 한다.
이윽고 아까 그 순사가 들어가던 곳으로 다른 순사 하나가 나온다. 그 순사도 두 사람의 모양을 유심히 보더니 책상 서랍에서 어떤 전보를 내어보며,
“노형이 이형식이오?” 하고 형식을 본다. 형식은 순사의 손에 있는 전보를 슬쩍 보면서,
“녜, 내가 이형식이오.”
노파가 우는 소리로,
“나리께서 그런 여자를 보셨습니까” 한다. 순사는 그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이 전보는 받았지요. 그래서 정거장에 나가 보았지마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옷을 입은 사람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하고 그 전보를 책상 위에 놓으며,
“왜? 도망하는 계집이오?”
형식은 그만 실망하였다. 영채는 정녕 죽었구나 하면서,
“아니오, 자살할 염려가 있어요” 하고 자기가 전보를 놓을 때에 그 인상(人相)을 자세히 말하지 못하였던 것을 한하였다. 먼저 나왔던 순사가 나와서 책상 위에 놓인 전보를 보면서,
“평양에 몇 사람이나 내리는지 아시오? 하고많은 사람에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안단 말이오?” 한다.

무정 - 05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