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버지를 만나 보고 간수에게 붙들려 도로 대합실에 나왔다. 그 간수가 아까 줄을 잡고 있던 간수와 달라 매우 친절하게 영채를 위로하여 주었다. 대합실 걸상 위에 앉히고, “울지 말아라. 이제 얼마 아녀서 네 아버지께서 나오시느니라” 하고 간절하게 위로하여 주었다. 그러나 아주 미련치 아니한 영채는 그것이 다만 저를 위로하는 말에 불과하는 줄을 알았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목을 놓아 울었다. 간수는 달래다 못하여, “울지 말고 어서 집에 가거라” 하고는 자기 갈 데로 가고 말았다. 그때에 곁에 앉았던 어떤 머리 깎고 모직 두루마기 입은 사람이 영채더러, “너 왜 우느냐. 여기 누가 와서 찾느냐?” 하고 아주 친절하게 묻는다. 영채는 그 아버지와 두 오라비가 이 감옥에 와 있는 말과 또 아버지와 오라비는 기실 아무 죄도 없다는 말과 자기는 아버지를 뵈올 양으로 혼자 이 먼 곳에 찾아왔다는 뜻을 고하였다. 영채 생각에, 이런 말을 하면 혹 자기를 불쌍히 여겨서 아버지도 자주 뵈옵게 하여 주고 또 얼마 동안 밥도 먹여 주려니 하였다. 그 사람이 이 말을 듣더니 아주 정성스럽고 다정한 말로 영채를 위로한다. “참 가엾고나. 아직 내 집에 있어서 다음 번 면회일을 기다려라. 한 달에 한 번씩밖에 면회를 아니 시켜 주는 것이니, 내 집에 가서 한 달쯤 있다가 또 한번 아버지를 만나 보고 집에 가거라” 한다. 영채는 한 달을 더 있다 가야 또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매, 마음이 답답하기는 하나 그 사람의 친절히 구는 것이 어떻게 감사한지 몰랐다. 또 영채의 생각에는 평양에 와서 아버지만 만나면 평생 아버지를 모시고 있을 줄로 알고 갔던 것이 정작 와본즉, 모시고 있기는커녕 한 달에 한 번씩밖에 더 뵈올 수가 없고, 또 손에 돈이 없고 평양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 저녁부터라도 먹고 잘 일이 걱정이라. 또 팔월도 이십 일이 지났으니, 아침 저녁에는 찬바람이 솔솔 불어 무명고의 베적삼이 으스스하게 되었고, 또 밤에 덮을 것도 없이 자려면 사지가 가들어들어(옹송그려져)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젯저녁에도 칠성문 밖 어떤 집 윗목에서 밤새도록 추워서 한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새웠더니, 아침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하여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세 번이나 설사를 하였다. 여러 날 괴로운 길의 노독과 고생과 또 오늘 아버지를 만날 때에 슬픔과 낙심으로 전신에 기운이 한땀도 없고 촌보를 옮길 생각이 없다. 이때에 마침 어떤 사람이 이렇게 친절하게 자기를 거두어 주니 영채는 슬픈 중에도 얼마큼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숙천 땅 어느 주막에서 머리 깎은 사람에게 속은 생각을 하매, 이 사람이 또 그러한 사람이나 아닌가 하고 의심이 나서 자세히 그 사람의 언어와 행동을 보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숙천서 보던 사람과 달라 옷도 잘 입고 얼굴도 점잖고 아무리 보아도 악한 사람은 아니로다. 또 만일 그가 나를 속이려거든 나는 입으로 그의 코를 물어뜯고 달아나면 그만이라 하였다. 우선 따뜻한 밥도 먹고 싶고, 불 잘 때인 방에서 이불을 덮고 잠도 잤으면 좋겠다 하였다. 이 사람의 집에 가면 아마 맛나는 밥도 주려니, 덮고 잘 이불도 주려니, 저만큼 옷을 입은 사람이면 집이 그만큼 넉넉하려니 하였다. 그래서 영채는 그 사람의 말대로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가는 길에도 그 사람은 영채의 손을 잡아 끌며 친절하게 여러 가지 말을 묻는다. 영채는 기운 없이 그 묻는 말을 대답하였다. 그 사람의 집은 남대문 안이었다. 영채가 아주 피곤하여 걸음을 못 걸으리만한 때에 그 사람의 집에 다다랐다. 집이 그리 크지는 아니하나, 얼른 보기에도 깨끗은 하였다. 문에는 김운룡(金雲龍)이라는 문패가 붙었다. 영채는 글씨를 잘 썼다 하고 생각하였다. 안에 들어가니 마당과 방 안이 극히 정결하고, 어떤 어여쁜 젊은 부인과 처녀 하나가 있었다. 영채는 혼자 생각에, 저 부인은 그 사람의 부인, 저 처녀는 그 사람의 누이라 하였다. 왜 어머니가 없는가. 그 사람의 어머니가 계실 듯한데, 아마 우리 조모님 모양으로 늙어서 죽었나 보다 하였다. 모든 것이 영채의 상상하던 바와 같으므로 영채는 아주 마음을 놓았다. 더구나 그 사람의 누이인 듯한 처녀가 있고 또 다른 남자가 없으니 더욱 좋다 하였다. 그 집 식구들은 다 영채를 사랑하였다. 그날 저녁에 영채는 생각하던 바와 같이 오래간만에 고깃국에 맛나는 밥을 먹었다. 식후에 그 사람은 어디로 나가고, 영채는 그 부인과 처녀와 함께 불을 켜놓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처녀는 영채를 남자로 알매,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나, 부인은 여러 가지로 영채의 신세를 물었다. 영채는 그 부인이 다정하게 혹 머리도 쓸어 주며 손도 만져 줌을 보고 하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신세를 말하였다. 자기가 부친과 오라비를 찾아 남자의 모양을 하고 외가에서 도망한 일과, 오다가 중로에서 여러 가지로 곤란당하던 일을 자세히 말할 때에, 그 처녀는 눈이 둥글하여지고, 부인은 영채의 등을 만지고 목을 쓸어안으면서 울었다. 영채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부인은 치맛고름으로 눈물을 씻으며, ‘어째 네 얼굴이 여자 같다 하고 이상히 여겼다’ 하면서 장을 열고 새로 지어 둔 옷 한 벌을 내어 주었다. 영채는 두어 번 사양하다가 마침내 입었다. 그러고는 세 사람이 더욱 정이 들어 웃고 이야기하였다. 그 중에도 지금까지 시치미떼고 앉았던 그 처녀가 갑자기 웃고 영채의 손을 잡으며 다정히 말하게 되었다. 영채는 아버지와 오라버니 일도 잠시 잊어버리고 없어진 집에 새로 돌아온 모양으로 기뻐하였다. 밤이 깊은 뒤에 그 사람이 돌아와서 부인께 영채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일동이 웃었다. 이렇게 며칠을 지내며 어서 한 달이 지나가서 다시 아버지를 뵈옵고 이러한 큰 은인의 말을 하려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