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차창을 열고 멀리 능라도 편을 바라보았다. 새벽 어스름에 아무것도 똑똑히 보이지는 아니하나, 평양 경치를 여러 번 본 형식의 눈에는 ‘저것이 능라도, 저것이 모란봉, 저기가 청류벽’ 하고 어렴풋하게 마음으로 지정하였다. 형식은 어저께 보던 영채의 편지를 생각하였다. ‘이 몸을 대동강의 푸른 물에 던져―’ 하고 형식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저 컴컴한 능라도 근방에 영채의 모양이 눈에 번쩍 보이는 듯하다. ‘탕탕한 물결로 하여금 이 몸의 더러움을 씻게 하고, 무정한 어별로 하여금 이 죄 많은 살을 뜯게 하려 하나이다.’ 형식은 영채의 시체가 바로 철교 밑으로 흘러내려오는 듯하여 얼른 창 밖에 머리를 내어밀어 물을 내려다보았다. 철교의 기둥에 마주쳐 둥그스름하게 물결이 지는 것이 보인다. 형식은 목에 무엇이 떨어짐을 깨달았다. 형식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컴컴한 구름이 움쩍도 아니하고 무겁게 덮여 있고 가는 안개비가 내리며 이따금 조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며, 형식의 길게 가른 머리카락이 펄펄 날린다. 형식은 무슨 무서운 것을 본 듯이 고개를 흠칫하고 차창에서 끌어들였다. ‘만일 대동강상에서 선생의 소매를 적시는 궂은 비를 보시거든 죄 많은 박영채의 눈물인 줄 알으소서’ 하던 영채의 편지의 일절이 번썩 눈에 보인다. 형식은 곁에 놓인 가방에서 그 언문 쓴 종이와 칼과 지환을 싼 뭉텅이를 내었다. 내어서 보려 하다가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차는 철교를 지났다. 좌우편에는 길게 늘어선 부인(빈) 화차(貨車)와 조고만 파수막들이 보인다. 노파는 멍하니 차창으로 내어다보던 눈으로 형식을 보며,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다. 그 눈과 얼굴에는 아직도 진정으로 걱정하는 빛이 보인다. 형식은 노파의 눈 뜬 영혼이 아직도 깨어 있구나 하였다. 노파는 아까 무서운 꿈을 꾸었다. 꿈에 자기가 차를 타고 평양으로 내려오는데, 차가 대동강 철교 위에 다다랐을 때에 철교가 뚝 부러져 자기의 탔던 차가 대동강물 속에 푹 잠겼다. 노파는 ‘사람 살리오?’ 하고 울면서 겨우 하여 물 위에 떠올랐다. 그러나 장마때가 되어 흙물 같은 커다란 물결이 노파의 머리를 여러 번 덮었다. 노파는 ‘아이구, 죽겠구나’ 하고 엉엉 울면서 물에 떴다 잠겼다 하였다. 이때에 노파의 눈앞에는 하얀 옷을 입은 영채가 우뚝 나섰다. 영채는 어제 아침에 자기의 방에 와서 하던 모양으로 방글방글 웃으며 ‘생각하여 보니깐 우스운 일이야요’ 한다. 노파는 팔을 내어밀고 ‘내가 잘못하였다. 용서하여라. 내 팔을 잡아당겨 다고’ 하였다. 그러나 영채는 노파의 팔을 잡으려 아니하고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며 하얀 이빨로 입술을 꼭 깨물어 새빨간 피를 노파의 얼굴에 뿌렸다. 노파는 이마와 뺨에 마치 끓는 물과 같이 뜨거운 핏방울이 뛰어옴을 깨달았다. 노파는 ‘영채야, 나를 살려 다고’ 하면서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잠을 깨었다. 노파는 잠이 깨자 곧 대동강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일기가 오랫동안 가물었으므로 대동강물은 꿈에 보던 것과 같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꿈과 같이 이 철교가 떨어지지나 아니할까 하고 열차가 철교를 다 지나도록 무서운 마음에 치를 떨다가 열차가 아주 육지에 나설 때에 비로소 마음을 놓고 한숨을 후 쉬며 형식에게,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고 영채의 일을 물음이라. 형식은 웃으며,
“어저께 전보를 놓았으니까 아마 경찰서에 가 있겠지요” 하고 말소리와 태도로 ‘걱정 없지요’ 하는 뜻을 표하였다. 노파는 형식의 말에 얼마큼 안심하였다. 그러나 아직 전보의 힘과 경찰서의 힘을 이용하여 본 일이 없는 노파에게는 형식의 말에 아주 안심하기는 어려웠다. 노파도 전보가 기차보다 빨리 가는 줄을 알건마는 하고많은 사람에 어느 것이 영채인 줄을 어떻게 알리요 한다. 더구나 노파는 일생을 기생계에서 지내므로 경찰이란 자기를 미워하는 데요, 성가십게 구는 데로만 생각한다. 그러고 영채가 아마 경찰서에 있으리라는 형식의 말을 듣고, 지기가 일찍 평양서 밀매음사건에 관하여 이삼 일 경찰서 구류간에서 떨던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이니까’ 하고, 영채는 경찰서에서 지난밤을 지냈더라도 자기와 같이 떨지는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얼마큼 안심을 하였다.
두 사람이 탄 열차는 평양역에 도착하였다. ‘헤이죠오’ 하는 역부에(역부의) 외치는 소리와 딸깍딸깍 하는 나막신 소리가 차가 다 서기도 전부터 들린다. 아까부터 짐을 묶고 옷을 입던 사람들은, 혹은 제가 먼저 내릴 양으로 남을 떠밀치고 나기기도 하고, 혹은 가장 점잖은 듯이 빙그레 웃으며 일부러 남들이 먼저 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형식과 뚱뚱한 노파도 플랫폼에 내렸다. 어느 군대에(군대의) 어른이 가는지 젊은 사관들이 일등차실 곁에 서서 여러 번 모자에 손을 대어 허리를 굽힌다. 뚱뚱한 서양 사람 두엇이 바지에 두 손을 찌르고 주위엣사람들은 번뜻도 보지 아니하면서 뚜벅뚜벅 왔다갔다한다. 어떤 일본 부인이 차를 아니 놓칠 양으로 크다란 ‘신겐부쿠로(信玄袋)’를 들고 통통통 뛰어들어온다.
북으로 더 갈 승객들은 세수도 아니한 얼굴에 맨머릿바람으로 우두커니 나와 서서 아는 사람이나 찾는 듯이 입구(入口)를 바라보고 섰다. 개찰인(改札人)은 부인(빈) 가위를 떼걱떼걱 하고 섰다. 형식과 노파는 출구(出口)를 나섰다. 지켜 섰던 순사가 흘긋 두 사람의 뒤를 본다. 형식과 노파는 인력거에 올랐다. 두 인력거는 여러 인력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뾰족비를 지나서 아직 전등이 반작반작하는 평양 시가로 들어간다. 안개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