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저녁에는 월화가 영채를 찾아와서 연설 구경을 가자고 한다. 그때에 평양에는 패성학교라는 새로운 학교가 일어나, 사방으로서 수백 명 청년이 모여들고, 패성학교장 함상모는 그 수백여 명 청년의 진정으로 앙모하는 선각자러라. 함교장은 매주일에 일차씩 패성학교 내에 연설회를 열고, 아무나 와서 방청하기를 청하였다. 평양 사람들은, 혹은 새로운 말을 들으리라는 정성으로, 혹은 다만 구경이나 하리라는 호기심으로 저녁 후면 패성학교 대강당이 터지도록 모여들었다. 함교장은 열성이 있고 웅변이 있었다. 그가 슬픈 말을 하게 되면 청중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그가 기쁜 말을 하게 되면 청중은 모두 손뼉을 치고 쾌하다 부르짖으며, 그가 만일 무슨 악한 일을 꾸짖게 되면 청중은 눈꼬리가 찢어지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의 말하는 제목은, 조선 사람도 남과 같이 옛날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새로운 문명을 실어 들여야 할 일과, 지금 조선 사람은 게으르고 기력이 없나니 새롭고 잘사는 민족이 되려거든 불가불 새 정신을 가지고 새 용기를 내어야 한다는 것과, 이렇게 하려면 교육이 으뜸이니 아들이나 딸이나 반드시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함이라.
영채도 함교장이란 말도 듣고, 함교장이 연설을 잘한다는 말도 들었으므로 월화를 따라 패성학교에 갔다. 두 사람은 (아무쪼록) 검소한 의복을 입었으나 얼굴과 태도를 속일 수가 없으며, 또 양인이 다 지금 평양에 이름난 기생이라 모이는 사람들 중에 손가락질하고 소곤소곤하는 것이 보인다. 월화와 영채는 회중을 헤치고 들어가 저편 구석에 가지런히 앉았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등을 밀치기도 하고 발을 밟기도 하고, 혹 제 손으로 두 사람의 손을 스치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월화의 겨드랑에 손을 넣는 자도 있다. 월화는, “너희는 기생이란 것만 알고, 사람이란 것은 모르는구나” 하고 영채를 안는 듯이 앞세우고 들어간 것이라. 부인계에는 연설을 들을 자도 없고 들으려 하는 자도 없으매, 별로 부인석이란 것이 있지 아니하므로 남자들 앉은 걸상 한편 옆에 앉았다. 함교장이 이윽고 부인이 있음을 보더니 어떤 학생을 불러 무슨 말을 한다. 그 학생이 의자 둘을 가져다가 맨 앞줄 왼편 끝에 놓더니 두 사람 곁에 와서 은근히 경례하면서,
“저편으로 와 앉으십시오” 하고 두 사람을 인도한다. 두 사람은 기생 된 뒤에 첫번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다 하였다. 이윽고 학생들이 들어와 착석한다. 월화는 저 학생들이 자기를 보는가 하고, 가만히 학생들의 동정을 보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모두 정면한 대로 까딱도 아니하고 앉았다. 월화는 영채를 보고 가만히,
“얘, 저 학생들은 우리가 보던 사람과는 딴세상 사람이지?” 하였다. 과연 함교장은 청년을 잘 교육하였다. 설혹 개성을 무시하고 만인을 한 모형에 집어넣으려는 구식 교육가의 때를 아주 다 벗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당시 조선에는 유일한 가장 진보하고 열성 있는 교육가였다. 과연 평양 성내에 월화를 보고 눈에 음란한 웃음을 아니 띄우는 자는 패성학교 학생밖에 없을 것이라. 학생들도 만일 월화를 본다 하면 ‘어여쁘다’ 하는 생각이 날는지도 모르고, ‘한번 더 보자’ 하는 생각이 날는지도 모르거니와, 그네는 결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저것을 하룻밤 데리고 놀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두지 아니한다. 또 설혹 그네가 ‘저것을 내 것을 삼았으면’ 하는 생각이 난다 하더라도 결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무릎에 앉히고) 희롱하려 함이 아니요, ‘나의 아내를 삼아 사랑하고 공경하리라’ 함이라. 다른 사람들은 월화를 다만 한 장난감으로 알되, 그네는 비록 기생을 천히 여긴다 하더라도 그 역시 내 동포여니 내 누이어니 하는 생각은 있다.
이윽고 함교장이 연단에 올라선다. 만장에 박수가 일어나고, 월화도 두어 번 박수한다. 영채는 옳지 부벽루에서 말하던 이로구나 하였다. (함교장은) 위엄 있는 태도로 이윽히 회중을 내려다보더니,
“여러분” 하고 입을 열어, “여러분의 조상은 결코 여러분과 같이 마음이 썩어지지 아니하였고, 여러분과 같이 게으르고 기운 없지 아니하였소. 평양성을 쌓은 우리 조상의 기상은 웅대하였고, 을밀대와 부벽루를 지은 우리 조상의 뜻은 컸소이다” 하고 감개무량한 듯이 한참 고개를 숙이더니, “여러분! 저 대동강에 물은 날로 흘러가느니, 평양성을 쌓고 을밀대를 짓는 우리 조상의 그림자를 비추었던 물은 지금 어디 간 곳을 알지 못하되, 오직 뚜렷한 모란봉은 만고에 한 모양으로 우리 조상의 발자국을 지니고 섰소이다. 아아, 여러분 아, 여러분의 웅장한 조상에게 받은 정신을 흘러가는 대동강에 부쳤는가, 만고에 우뚝 솟은 모란봉에 부쳤는가” 하고 흐르는 눈물로써 말을 잠깐 그치니, 만장이 숙연히 고개를 숙인다. 함교장은 여러 가지로 조선 사람의 타락한 것을 개탄한 뒤에 일단 더 소리를 높여, “여러분! 여러분은 이 무너져 가는 평양성과 을밀대를 다 헐어 내어 흘러가는 대동강수에 부쳐 보내고, 우리의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기운으로 새로운 평양성과 새로운 을밀대를 쌓읍시다” 하고 유연히 단을 내리니 만장이 박수갈채성에 한참이나 흔들리는 듯하다. 월화는 영채의 손을 꼭 쥐고 몸을 바르르 떤다. 영채는 놀라서 월화를 보니, 무릎 위 치맛자락에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
영채도 함교장의 풍채를 보고 연설을 들으매,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각이 나서 울면서 월화를 따라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월화의 눈물은 영채의 눈물과는 달랐다. 월화의 눈물은 어떠한 눈물이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