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형식을 보고 눈을 끔적한다. 형식은 일부러 안 보는 체한다. 우선은 또 한번 눈을 끔적한다. 형식은 안 보는 체하면서도 그것을 다 보았다. 그러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더 부끄럽고 더 머리가 혼란하다. 우선의 눈 끔적하는 뜻을 해석해 본다. ‘얼른 허락을 해라’ 하는 뜻인지, ‘어서 평양을 가지 아니하고 왜 가만히 앉았느냐’ 하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노파는 참다못한 듯이 우선을 꾹 찌르며,
“왜 이선생이 허락을 아니하오. 그 처녀가 마음에 아니 드나요.”
“흥, 그 처녀가 서울에 유명한 미인이랍니다.”
“또 부자고요?”
“부자기에 사위까지 미국을 보낸다지요.”
노파는 미국에 보내는 것과 부자인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지마는,
“그런데 왜 저러고 앉았어요?” 하고 입을 쩍 다시며 담배를 담는다. 목사가,
“그렇게 하시지요” 하고 다시 재촉할 때에 형식은 겨우,
“그러면 갑지요! 그러나 약혼은 일후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하였다. 목사는,
“내 교회에 갔다가 오는 길에 들르리다” 하고 웃으며 나간다. 형식은 대문 밖까지 목사를 보내고 들어왔다. 형식의 얼굴은 마치 선잠을 깨인 사람의 얼굴 같다. 우선이가 뛰어오며,
“자네 땡잡았네그려. 미인 얻고 미국 유학 가고” 하고 형식의 손을 잡아 흔든다. 형식은 우선의 눈을 피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형식의 눈에도 웃음이 있었다. 우선은 다시,
“허, 자네도 수단이 용한걸. 불과 이삼 일에 그렇게 쉽게 선형 씨를 손에 넣어!”
노파도 웃으며,
“내 그런 줄 알았지. 어째 영채 씨가 오셨는데도 만류도 아니하고…… 그저 영채 씨가 불쌍하지…… 이선생은 벌써 정들여 둔 데가 있는데 공연히……” 말이 끝나기 전에 우선은 노파를 돌아보고 눈을 끔적하며, “쉬!” 하였다. 형식은 짐짓 노파의 말을 못 들은 체하고 우선더러,
“나는 경성학교 사직했네.”
“어느새에 사직을 하여, 약혼이나 되거든 하지. 허허허.”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나는 교사 노릇을 그만둘라네.”
“암, 미국 유학으로 돌아오셔서 대학 교수가 되실 터이니까.”
형식은 성난 듯이 획 돌아서며,
“자네는 남의 말을 조롱만 하려고 들데그려. 남은 마음이 괴로워서 그러는데…….”
“응, 동정하네, 퍽 괴로우실 테지.” 노파도 우선의 곁으로 오며,
“내가 어떻게 기쁜지 모르겠소. 이선생이 장가를 드신다니까 내 아들이……” 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또 형식을 자기의 아들에 비기는 것이 버릇없는 듯도 하여, “오늘 저녁에 가시거든 확실하게 허락을 합시오. 아까는 왜 그렇게 우두커니 앉았담…… 호호, 아직 도련님이니깐 수줍어서 그러시는가 보여.”
형식은 어쩔 줄을 모르고 공연히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하며 왼편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기도 하고 손가락 마디를 딱딱 소리를 내기도 하더니,
“여보게 나는 지금 평양으로 떠나겠네. 암만해도…….”
우선은 위협하는 듯이 형식을 노려보며,
“에그, 못생긴 것. 딸이 썩어져 가기로 저런 것을 준담!”
형식도 이 말에는 웃었다. 그러고 과연 못생긴 소리를 하였다. 우선은,
“이제부터는 좀 굳센 사람이 되게. 그게 무엇이람. 계집애도 아니요…… 딴소리 말고 오늘 저녁 김장로 집에 가게. 가면 또 혼인말이 날 터이니까, 아까 모양으로 못난이 부리지 말고 허락하게. 그러고 미국 가게. 나도 경성학교 말을 들었네. 아마 자네는 사직을 아니하더라도 쫓겨나겠나 보데.”
“쫓겨나? 왜?”
“자네가 기생을 따라서 평양 갔다고. 청량리 원수 갚는 게지. 하니까, 약혼하고 미국 가게.”
“그러면 영채는 어떻게 하고?”
“죽은 영채를 어쩐단 말인가. 자네도 따라 죽을 터인가, 열녀가 아니라 열남이 될 양으로. 그런 미련한 소리 말고 어서 꼭 내 말대로만 하게.”
우선의 말을 들으매 형식도 얼마큼 안심이 된다. 자기도 그만한 생각을 못 함이 아니지마는 자기 생각만으로는 안심이 아니 되다가 우선의 활발한 말을 듣고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형식은 우선의 말대로 하리라 하였다. 제 생각대로 한다는 것보다 우선의 말대로 한다는 것이 더 마음에 흡족한 듯하였다. 형식은 빙그레 웃으며,
“글쎄” 하였다. 노파도 공연히 기뻐한다.
“점심을 차릴까요. 신주사도 한술 잡수시고.”
“또 장찌개 주실랍잉아” 하고 우선이가 형식의 조끼에서 제 것같이 궐련을 뽑아 손바닥에 턱턱 긁을 박는다.
“그만둡시오. 웬 장찌개.”
“가서 냉면이나 시켜 오오” 하고 형식이가 일어난다.
“요, 한턱하시려네그려. 한턱하려거든 맥주나 사주게.”
“돈이 있나.”
“부잣집 사위가 무슨 걱정이야.”
“부잣집 사위는 이따 되더라도.”
“그 오 원 안 있나.”
“평양 가야지.”
“또 평양을 가?”
“가서 시체나 찾아야지.”
“벌써 황해바다에 떠나갔어! 자네 같은 무정한 사람 기다리고 아직까지 청류벽 밑에 있을 듯싶은가. 자 청요릿집에나 가세.”
“벌써 황해바다에 갔을까!” 하고 형식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정 태양이 바로 서울 한복판에 떠서 다 데어 죽어라 하는 듯이 그 불 같은 볕을 담아 붓는다. 형식은 새삼스럽게 더운 줄을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