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연회로서 돌아오는 길에 영채는 월화를 따라 청류벽 밑으로 산보하였다. 그때에 마침 평양 패성중학(대성학교를 모델로 한 것임. 신문연재본과 신문관본에는 모두 ‘패성학교’로 되어 있으며, 삼중당 전집 이후 현재는 대성학교로 고쳐져 있음. 이하 동일―편자 주)이라는 학교의 학생 사오 인이 청류벽 바위 위에 서서 유쾌하게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굽이지는 대동강이
능라도를 싸고도니
둥두렷한 모란봉이
우쭐우쭐 춤을 추네
청류벽에 걸어앉아
가는 물아 말을 들어
청춘의 더운 피를
네게 부쳐 보내고저
월화가 영채의 소매를 당기며,
“얘, 저 노래를 듣느냐.”
“매우 듣기 좋습니다.”
월화는 한숨을 쉬며,
“저 속에 시인이 있기는 있고나” 하고 잠연히 눈물을 흘렸다. 영채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다만 청류벽 위에서 노래 부르던 학생들을 보았다. 학생들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는데 두루막자락이 바람에 펄펄 날린다. 영채도 어째 자연히 그 학생들이 정다운 듯하고 알 수 없는 설움이 가슴에 떠오르는 듯하여 월화의 어깨에 엎데어 월화와 함께 울었다. 월화는 영채를 안으며,
“영채야, 저 속에 참시인이 있느니라” 하고 아까 하던 말을 또 한다.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다. 그것들은 먹고 입고, 계집 희롱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없는 것들이니라. 그러나 저 학생들 속에 참시인이 있느니라.”
이때에 학생이 또 다른 노래를 부른다.
새벽빛이 솟는다
해가 오른다
땅 위에 만물이
기뻐 춤을 추노나
천하 사람 꿈꿀 제
나만 일어나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 부르네
월화는 못 견디어하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영채더러,
“이애, 저기 올라가 보자.”
그러자 이 말이 끝나기 전에 학생들은 모자를 벗어 두르고 저편 고개로 넘어가고 말았다. 월화는 길가 돌 위에 펄썩 주저앉아서 아까 학생들이 부르던 노래를 십여 차나 불러 보았다. 영채도 자연히 그 노래가 마음에 드는 듯하여 월화와 함께 십여 차나 불렀다. 그러고 월화는 한참이나 지금 학생들 섰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학생들은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로부터 월화는 더욱 우는 날이 많게 되었다. 영채는 월화와 함께 울고, 틈이 있는 대로는 월화와 같이 있었다. 영채는 더욱더욱 월화에게 정이 들고 월화도 더욱더욱 영채를 사랑하였다. 열다섯 살이나 된 영채는 차차 월화의 뜻을 알게 되었다. 뜻을 알게 될수록 월화의 눈물에 동정하게 되었다. 영채도 점점 미인이라는 이름과 노래 잘하고 단율 잘 짓는다는 이름이 나서, 영채라는 오늘 아침에 핀 꽃을 제가 꺾으리라 하는 사람이 많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찍 월화가 부벽루에서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부벽루 연회 이래로 월화의 변하고 괴로워하는 모양을 보매, 어린 영채도 월화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은 짐작하였다. 영채도 이제는 남자가 그리운 생각이 나게 되었다. 못 보던 남자를 대할 때에는 얼굴도 후끈후끈하고, 밤에 혼자 자리에 누워 잘 때에는 품어 줄 누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나게 되었다. 한번은 영채와 월화가 연회에서 늦게 돌아와 한자리에서 잘 때에 영채가 자면서 월화를 꼭 껴안으며, 월화의 입을 맞추는 것을 보고 월화는 혼자 웃으며, “아아, 너도 깨었구나― 네 앞에 설움과 고생이 있겠구나” 하고 영채를 깨워,
“영채야, 네가 지금 나를 꼭 껴안고 입을 맞추더구나” 하였다. 영채는 부끄러운 듯이 낯을 월화의 가슴의(가슴에) 비비고 월화의 하얀 젖꼭지를 물며, “형님이니 그렇지” 하였다. 이만큼 영채도 철이 났으므로 월화의 눈물에는 반드시 무슨 뜻이 있으리라 하였다. 그러고 물어 볼까 물어 볼까 하면서도 자연히 제가 부끄러워 물어 보지 못하고, 다만 영채 혼자 생각에 아마 월화가 그때 청류벽에서 노래 부르던 학생을 생각하는 게로다 하였다. 영채의 눈에도 그 청류벽에서 노래 부르던 학생의 모양이 잊히지를 아니한다. 무론 길에서 청류벽을 바라보면, 그 위에 선 사람의 얼굴의 윤곽이 보일 뿐이요 눈과 코도 잘 분별하지는 못하겠으나, 다만 거룩한 듯한 모양과 깨끗한 목소리와 뜻있고 아름다운 노래가 두 여자의 가슴을 서느렇게 한 것이라. 그 청년들은 아마 무심하게 그 노래를 불렀으련마는 아직 ‘진실한 사람’, ‘정성 있는 사람’, ‘희망 있는 사람’,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 보지 못하던 그네에게는 그 학생들의 모양과 노래가 지극히 분명하게 청신하게 인상이 박힌 것이라. 영채는 가만히 그 노래 부르던 학생들과, 지금껏 같이 놀던 소위 신사들을 비교할 때에 아무리 하여도 그 학생이 정이 든다 하였다. 영채는 근래에 더욱 가슴속이 서늘하고 몸이 간질간질하고 자연히 마음이 적막함을 깨닫는다. 월화가 물끄러미 자기의 얼굴을 볼 때에는, 혹 자기의 속을 꿰뚫어보지나 아니하는가 하여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월화도 영채의 마음이 점점 익어 옴을 깨달았다. 그러고 자기의 과거를 생각하매, 영채의 장래에 설움이 많을 것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월화는 영채가 잘못하여 세상에 섞이기를 두려워하는 모양으로 항상, “영채야, 지금 세상에는 우리의 몸을 의탁할 만한 사람이 없나니라” 하고 옛날 시로 일생의 벗을 삼기를 권하였다.
영채는 월화의 눈물의 뜻을 알려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알 기회가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