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과 노파는 아주 절망하여 경찰서에서 나왔다. 안개비에 길이 눅눅하게 젖었다. 아까보다 사람도 많이 다니고 구루마도 많이 다닌다. 상점에서는 널쪽 덧문을 열고, 어떤 사람은 길가에 나와 앉아서 세수를 하며 어떤 사람은 방 안에 앉아서 소리를 내어 신문을 본다. 찌국찌국 하고 오던 물지게들은 모로 서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우편 집배인(集配人)이 검은 가죽가방을 메고 손에 열쇠 뭉치를 들고 껑충껑충 뛰어온다. 노파는 형식의 손에 매어달려 걸음을 잘 걷지 못한다. 형식은 시장증이 난다. 노파더러,
“어디 들어가서 조반을 사먹고 찾아봅시다. 설마 죽었겠어요” 한다. 노파는 형식을 보며,
“아이구, 나도 대동강에나 가서 빠져 죽었으면 좋겠소” 하고 눈물을 씻는다. 형식은 어저께 우선이로 더불어 노파의 집에 갔을 때에 ‘뒷간에 있는데 야단을 하시구려’ 하며 치맛고름을 고쳐 매던 노파를 생각하였다. 형식은,
“어서 너무 슬퍼 마시오. 아직 아니 죽고 세상에 있는지 알겠어요? 자, 어디 가서 조반이나 먹읍시다” 하고 혼자말 모양으로, “장국밥이 있을까?” 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노파는 ‘아니 죽고 세상에 있는지!’ 하는 말에 얼마큼 위로를 얻으며,
“장국밥집에를 어떻게 들어갑니까. 나 아는 집으로 가시지요” 한다. 노파가 ‘나 아는 집’이라면 기생집이리라 하였다. 그러고 어리고 고운 기생들의 모양이 눈에 얼른 보인다. 그러고 노파의 말대로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난다. ‘예쁜 여자를 보기만 하는 것이야 상관이 있으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모양으로 아름다운 꽃을 대하는 모양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그러나 한 핑계가 되기 쉽다’ 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내 마음은 깨끗하다’ 하면서,
“어디오니까. 그러면 그리로 가시지요” 하고는 그래도 노파의 뒤를 따라 기생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모양이 흉하다 하여 노파를 거기 데려다 두고 자기는 어디든지 다른 데로 가리라 하였다.
형식은 노파의 뒤를 따라 어떤 깨끗한 기와집 대문 밖에 섰다. 아직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고 쓴 대문은 열리지 아니하였다. 노파는 마치 자기 집 사람을 부르는 모양으로,
“얘들아, 자느냐. 문 열어라!” 하면서 문을 서너 번 두드리더니 형식을 돌아보며,
“영채가 여기는 있으면 아니 좋겠어요” 하고 뜻없이 웃는다. 형식은 속으로 ‘영채는 벌써 죽었는데’ 하고 말이 없었다. 이윽고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가 신을 짤짤 끌며 나와서,
“누구셔요?” 하고 문을 연다. 형식은 한 걸음 비켜 섰다. 어떤 얼굴에 분자리 보이는 십삼사 세 되는 계집아이가 노파에게 매어달리며 반가운 듯이,
“아이구, 어머니께서 오셨네” 하고 ‘네’자를 길게 뽑는다. 머리와 옷이 자다가 뛰어나온 사람이로구나 하고 형식은 두 사람이 반가워하는 양을 보았다. 어여쁜 처녀로다. 재주도 있을 듯하고 다정도 할 듯하다 하였다. 그러나 저도 기생이로구나 하고 형식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아직 처녀의 모양으로 차렸건마는 벌써 처녀는 아니리라. 혹 어젯저녁에 어떤 사나이의 희롱을 받지나 아니하였는가 하였다. 노파는 대문 안에 한 걸음 들어서면서 목을 내어밀어,
“들어오시지요. 내 집이나 다름없습니다” 한다. 그 어린 기생은 그제야 문 밖에 어떤 사람이 있는 줄을 알고 고개를 기울여 형식을 본다. 형식은 그 좀 두터운 듯한 눈껍질이 곱다 하면서,
“나는 어떤 친구에게로 갈랍니다. 조반을 먹거든 이리로 오지요” 하고 모자를 벗는다. 노파는 문 밖으로 도로 나오며,
“그러실 것이 있어요, 들어오시지. 내 동생의 집인데요” 하고 형식의 소매를 잡아당긴다. 그래도 형식은 굳이 간다 하는 것을 이번에는 그 어린 기생이 나와 그 고운 손으로 형식의 등을 밀고 아양을 부리며,
“들어오셔요!” 한다. 형식의 생각에 아무리 보아도 그 어린 기생의 마음에는 티끌만한 더러움도 없다 하였다. 저 영채나 선형이나 다름없는 아주 깨끗한 처녀라 하였다. 그러고 그 등을 살짝 미는 고운 손으로 따뜻한 무엇이 흘러들어오는 듯하다 하였다. 형식은 남의 처녀를 볼 때에 늘 생각하는 버릇으로 ‘내 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얼마를 더 사양하다가 마침내 마지못하여 그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 팔을 노파에게 잡히고 다른 팔을 그 어여쁜 기생에게 잡히고 들어가는 맛은 유쾌하다 하였다. 인도함을 받아 들어간 방은 영채의 방과 크게 틀림이 없었다. 그 어린 기생은 얼른 먼저 뛰어들어가 자리를 갠다. 형식은 문 밖에서 그 빨간 깃들인 비단 이불이 그 어린 기생의 손에서 번적번적하는 양을 보았다. 노파와 형식은 들어앉았다. 기생은 저편 방에 가서 기쁜 소리로,
“어머니, 서울 어머니께서 오셨어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형식은 그 방에서 무슨 향내가 나는 듯이 생각하였다. 그러고 방바닥을 짚은 형식의 손은 따뜻한 맛을 깨달았다. 이는 그 기생의 몸에서 흘러나온 따뜻함이라 하였다. 이윽고 기생이 어린아이 모양으로 뛰어들어오며,
“지금 어머니 건너오십니다. 그런데 아침차로 오셨어요?” 하고 말과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빛이 보인다. 형식은 ‘다 같은 사람이로구나’ 하였다. 따뜻한 인정은 사람 있는 곳에 아무 데나 있다 하였다. 그러고 담배를 내어 들고 조끼에서 성냥을 찾으려 할 제 그 기생이 얼른 성냥을 집어 불을 켜들고 한 손으로 형식의 무릎을 짚으면서,
“자, 붙이시오!” 한다. 형식은 그를 깨끗한 어린아이 같다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