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채는 그 동안 여러 기생을 보았다. 그러고 그네들 중에 어떠한 사람이 있는가 보았다. 영채가 ‘형님’ 하고 정답게 지내던 자도 수십 인이요, ‘야, 네더냐’ 하고 동무로 지내던 자도 수십 인이요, 영채더러 ‘형님!’ 하고 정답게 따르던 자도 몇 사람이 있었다.
영채가 평양서 기생이 되어 맨 처음 ‘형님’ 하고 정들인 기생은 계 월화라 하는 얼굴 곱고 소리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때에 평양 화류계에 풍류 남자들의 눈은 실로 이 월화 한 사람에게 모였었다. 월화는 단율도 잘 짓고 묵화도 남 지지 아니하게 쳤다. 그래서 월화는 매우 자존하는 마음이 있어서 여간한 남자는 가까이하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퇴맞은 남자들에게는 ‘교만한 년’ ‘괘씸한 년’이라는 책망도 듣고, 그 소위 어미 되는 노파에게는 ‘손님께 공손하라’는 경계도 들었다. 그러나 월화는 자기의 얼굴과 재주를 높이 믿었다. 그래서 제 눈에 낮게 보이는 손님을 대할 때에는, “솔이 솔이 하니 무슨 솔이로만 여겼던가 / 천인 절벽에 낙락장송 내 기로다 / 길 아래 초동의 낫이야 걸어 볼 줄 있으랴” 하는 솔이〔松伊〕가 지은 시조를 불렀다. 그래서 그의 친구들은 월화를 ‘솔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실로 월화의 이상은 ‘솔이’였었다. 영채가 월화를 사랑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 영채의 눈에 월화라는 기생은 족히 열녀전에 들어갈 만하다 하였다. 그러고 ‘솔이’라는 기생이 어떠한 기생인지도 모르면서 월화가 솔이를 이상으로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 모양으로 솔이를 이상으로 하였다. 영채가 일찍 월화에게 안기며, “형님! 형님과 저와 솔이와 세 사람이 친구가 됩시다” 한 일이 있었다. 그러고 나도 반드시 월화 형님과 같이 솔이가 되리라 하였다.
월화의 얼굴과 재주를 보고 여러 남자가 침을 흘리며 모여들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부자도 있고 미남자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다투어 옷을 잘 입고 금시계와 금반지를 끼고 아무리 하여서라도 월화의 사랑을 얻으려 하였다. 그러나 월화가 머릿속에 그리는 남자는 그러한 경박자는 아니었다. 월화는 이태백을 생각하고 고적(高適)과 왕창령(王昌齡) 같은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을 생각하고 양창곡(楊昌曲)과 이도령(李道令)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월화의 주위에 모여드는 남자들 중에는 하나도 그러한 사람이 없고 다만 ‘돈’과 ‘육욕’이 있는 사람뿐이었다. 월화는 어느 요리점 같은 데 불려 갔다가 밤이 깊어 돌아오는 길에 영채를 찾아와서는 흔히 눈물을 흘리며,
“영채야, 세상이 왜 이렇게 적막하냐. 평양 천지에 사람 같은 사람을 볼 수가 없구나” 하였다. 영채는 아직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거니와 대체 ‘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어니 하였다. 그러고는 영채는 어린 생각에 ‘나는 이형식이가 있는데’ 하였다.
월화는 점점 세상을 비감하게 되었다. 그가 영채에게 당시를 가르치다 흔히 영채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영채야, 네나 내나 왜 이러한 조선에 났겠느냐” 하였다. 그때에 영채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러면 어디 났으면 좋겠소?” 하였다. 월화는 영채의 어린 것을 불쌍히 여기는 듯이,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하였다. 월화는 성당시대 강남에 나지 못한 것을 한하였다. 탁문군은 자기언마는 봉황곡으로 자기를 후리는 사마상여의 없음을 한하였다. 월화의 생각에는 하늘이 대동강을 내시매, 모란봉을 또 내셨으니 계월화는 대동강이 되려니와 누가 모란봉이 되어 봄에는 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그 그림자를 부벽루 앞에 비추리요 하였다.
월화는 조선 사람의 무지하고 야속함을 원망하였다. 더구나 평양 남자에 일개 시인이 없고 일개 문사가 없음을 한하였다. 그가 나이 이십이 되도록 한 번도 자기의 뜻에 맞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슬픈 마음과 세상을 경멸하는 비웃음으로 옛날 시를 읊고 저도 시와 노래를 짓기로 유일의 벗을 삼았었다. 그러고 영채를 사랑하여 친동생같이 귀애하며, 시 읽기와 시 짓기를 가르치고 마음이 슬픈 때에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채에게 자기의 회포를 말하였다. 그러할 때마다 영채는 “형님!” 하고 월화의 가슴에 안겨 울었다.
일찍 어느 연회에 평양 성내 소위 일류 인사들과 일등 명기가 일제히 모였다. 이(른 여름) 바람 잔잔한 모란봉 밑 부벽루가 그 회장이었다. 그때 월화가 영채에게, “야 영채야, 너는 보느냐?” 하고 한편 구석에 끌고 가서 귓속말을 하였다. “무엇이오?” 하고 영채는 좌석을 돌아보았다. 월화는 영채의 귀에 입을 대고, “저기 모인 저 사람들이 평양의 일류 명사란다. 그런데 저 소위 일류 명사란 것이 모두 다 허자비에게 옷 입혀 놓은 것이란다” 하고 다시 기생들을 가리키며, “저것들은 소리와 몸을 팔아먹고 사는 더러운 계집년들이란다” 하였다. 그때에는 영채가 열다섯 살이었다. 그러므로 전보다 분명하게 월화의 말하는 뜻을 알아들었다. 그러고, “참 그렇소” 하고 조고마한 고개를 까닥까닥 흔들었다. 이러한 말을 할 때에 어떤 양복 입은 신사가 웃으며 월화의 곁에 오더니 목에 손을 얹으며, “야 월화야, 어째 여기 섰느냐” 하고 끌고 가려 한다. 이 신사는 그때에 한창 월화에게 미쳤던 평양 일부 김윤수의 맏아들이니, 지금 나이 삼십여 세에 여태껏 하여 온 일이 기생 오입밖에 없었다. 월화는 무론 이 사람을 천히 여겼다. 그래서 이 사람 앞에서도 ‘솔이 솔이 하니’를 불렀다. 이때에 월화는 너무 불쾌하여, “왜 이러시오” 하고 몸을 뿌리쳤다. 뒤에 알아본즉, 이때에 이 좌석에 월화의 마음을 끄는 어떤 신사가 있었더라. 그는 어떠한 사람이며 그와 월화와의 관계는 장차 어찌 될는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