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욱과 영채는 차에 올라서 차창으로 전송하는 일행을 내다본다. 병국도 사리원까지 갈 일이 있다 하여 같이 올랐으나, 자기는 오늘 저녁에 돌아올 길인 고로 걸상에 앉은 대로 바깥을 내다보지도 아니한다. 모친은 차창에 붙어서,
“얘, 조심해 가거라“를 두 번이나 하고,
“얘, 한 달에 두 번씩은 꼭꼭 편지를 해라“를 서너 번이나 하였다. 병국의 부인은 바로 시어머니의 곁에 붙어 서서 병국(병욱)과 영채를 번갈아 본다. 더위에 붉게 된 그 조고마하고 말끔한 얼굴이 아름답게 보인다. 떨렁떨렁 하는 종소리가 나고 차장의 호각 소리가 날 적에 병국의 부인은 차창을 짚은 영채의 손을 꼭 누르며,
“가거든 편지 주셔요” 한다. 그 눈에는 눈물이 있다. 그것을 마주보는 영채의 눈에도 눈물이 있다. 헌병들이 흘끗흘끗 이 광경을 보고 벤또 파는 아이의 외치는 소리가 없어지자, 고동 소리와 함께 차가 움직이기를 시작한다. 모친은 또 한번,
“부디 조심해 가거라“를 부르며 눈을 한번 끔벅 한다. 병욱과 영채는 차창으로 머리를 내밀고 손수건을 두른다. 모친도 수건을 두르건마는 병국의 부인은 가만히 서서 보기만 한다. 부친도 한번 팔을 들어 두르더니 돌아서 나간다. 덜컥 소리가 나고, 차가 휘돌더니 정거장에 선 사람 그림자가 아주 아니 보이게 된다. 두 사람은 그래도 두어 번 더 수건을 내어두르고는 도로 제자리에 앉는다. 앉아서 한참은 멍멍하니 피차에 말이 없다. 차의 속력이 점점 빨라지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병국은 맞은편 줄 걸상에 모으로 앉아서 두 사람을 건너다보며 부채질을 한다. 차 속에는 선교사인 듯한 늙은 서양 사람 하나와 금줄 두 줄 두른 뚱뚱한 관리 하나와, 그 밖에 일복 입은 사람 이삼 인뿐이다. 그네들은 모두 다 흰옷 입은 이등객을 이상히 여기는 듯이 시선을 이리로 돌린다. 병국은 건너편에 앉은 누이에게 말이 들리게 하기 위하여 몸을 앞으로 숙이며,
“나는 네 덕분에 (이등을) 이등을 처음 탄다” 하고 웃는다.
“그렇게 이등이 부러우시거든 더러 타십시오그려” 하고 병욱도 웃는다.
“우리와 같은 아무것도 아니 하는 사람들이 삼등도 아까운데 이등을 어떻게 타니? 죄송스러워서…….”
“그러면 왜 이등표를 사주셨어요. 저 짐차에나 처실어 주시지” 하고 병욱은 성을 내는 듯이 시치미뗀다. 영채는 우스워서 고개를 숙인다. 이렇게 남매간에 어린애 싸움같이 농담을 하다가 병국이가,
“영채 씨도 명년에 귀국하시겠소.”
“녜, 제야 알겠습니까.”
“왜, 나와 같이 오지. 그럼 나 혼자 올까. 형제가 같이 다녀야지” 하고 병욱이가 영채를 보다가 병국을 본다. 영채는,
“그럼 언니께서 데려다 주신다면 오지요” 하고 웃는다. 병욱은 어리광하는 듯이 병국을 보고 몸을 흔들며,
“오빠, 명년에 우리 둘이 같이 와요” 하고 묻는 말인지 대답하는 말인지 분명치 아니한 말을 한다. 병국은,
“그러면 얘하고 같이 오시지요. 댁이 없으시다니 내 집을 집으로 알으시고…….”
“녜, 감사합니다” 하고 영채가 고개를 숙인다.
이러한 말을 하는 동안에 차가 벌써 걸음을 멈추며, “사리잉, 사리잉!” 하는 역부의 소리가 들린다. 병국은 모자를 벗고, “그러면 잘들 가거라” 하고 뛰어서 차를 내린다. 내려서 두 사람이 앉은 창 밑에 와서 선다. 두 사람도 내다본다. 몇 사람이 뛰어내리고 뛰어오르기가 바쁘게 또 차장의 호각 소리가 난다. 차가 움직인다. 병국은 모자를 높이 든다. 두 사람도 손을 내어두르며 고개를 숙인다. 병국은 차차 작아 가는 두 팔과 머리를 보고, 두 사람은 차차 작아 가는 모자를 두르는 병국을 보았다.
영채는 왜 그런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여진다. 그래서 정신이 황홀하여지는 듯하였다. 병욱은 슬적슬적 영채의 낯빛을 살피더니 영채를 웃기려고,
“얘, 너 그때에 눈에 석탄재가 들어가서 울던 생각 나니?” 하고 자기가 먼저 웃는다. 영채도 웃는다. 병욱은,
“석탄 가루 들어간 것이 그렇게 아프더냐?”
“누가 그것이 아파서 울었나. 자연히 화가 나서 울었지” 하고 그때 생각을 하여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 웃는다.
“아무려나 그때에 네가 우는 얼굴이 어떻게 예뻐 보이든지…… 내가 남자면 당장에 홀리겠더라.”
“에그, 그런 소리만 하시지!” 하고 영채가 손으로 병욱의 무릎을 때린다.
“얘, 잠깐 서울 들러 가자.”
“에그, 싫여요. 누가 보면 어쩌나.”
“서울서는 지금 네가 죽은 줄 알겠구나. 그 이형식 씬가 한 이도.”
“아마 그럴 테지요. 실상 죽었으니깐.”
“누가? 네가? 왜?”
“그때, 나는 벌써 죽지 않았어요? 언니께서 얼굴 씻어 주실 때에.”
“그러고 부활을 했구나.”
“암, 부활이지. 참, 언니 아니더면 꼭 죽었어요. 벌써 다 썩어졌겠네.”
“썩도록 깃허(붙어) 있나.”
“그러면 어쩌고?”
“고기가 다 뜯어먹고 말지.”
“그렇게 큰 것을 고기가 다 어떻게 먹어요?”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병욱은,
“얘, 네가 처음 나를 볼 때에 어떻게 생각했니?”
“웬 일본 여자가 이렇게 조선말을 잘하고 친절하게 하는고, 했지요.”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퍽 활발한 여자다 했지요.”
“그러고 너 그때에 먹은 것이 그게 무엇인지 아니?”
“나 몰라. 어떻게 먹는 것인지 몰라서 언니 잡수시는 것을 가만히 보았지요.”
“내 아예 그런 줄 알았다. 그것은 서양 음식인데 샌드위치라는 것이어…… 꽤 맛나지?”
“응” 하고 고개를 까딱 하며 “샌드위치” 하고 발음이 분명하게 외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