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은 한참 생각하더니,
“그러면 선생께서는?”
“제야 선형 씨를 사랑하지요. 생명보다 더 사랑하지요.”
“그러면 그만 아닙니까.”
“아니오. 선형 씨도 저를 사랑하셔야지요.”
“아내가 지아비를 아니 사랑하겠습니까.”
형식은 물끄러미 선형을 본다. 선형은 고개를 숙인다.
“그것은 뉘 말입니까.”
“성경에 안 있습니까.”
“그렇지마는 선형 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선형 씨의 진정으로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아내가 되었으니까 지아비를 사랑합니까, 또는 사랑하니까 아내가 됩니까.”
이것도 선형에게는 처음 듣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도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마찬가지 아닙니까.”
‘마찬가지’라는 말에 형식은 놀랐다. 그것이 어찌하여 마찬가질까. 이 계집애는 아직 그런 것을 생각할 줄을 모르는구나 하였다. 그래서 일언이폐지하고,
“한마디로 대답해 줍시오…… 저를 사랑하십니까” 하는 소리는 얼마큼 애원(哀願)하는 듯하다. ‘아니오’ 하는 대답이 나오면 형식은 곧 죽을 것 같다. 꼭 다문 선형의 입술은 형식의 생명을 맡은 재판장의 입술과 같다. 선형은 이제는 머리가 혼란하여 더 생각할 수가 없다. 형식의 비창한 얼굴을 보매 다만 무서운 생각이 날 따름이다. 그래서 다만,
“녜!” 하였다. 형식은 한번 더 물어 보려 하다가 ‘녜’가 변하여 ‘아니오’가 될 것이 무서워서 꾹 참고 갑자기 선형의 손을 쥐었다. 그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마치 형식의 손에 녹아 버리고 마는 듯하였다. 선형은 가만히 있다. 형식은 한번 더 힘을 주어서 선형의 손을 쥐었다. 그리하고 선형이가 마주 꼭 쥐어 주기를 바랐으나 선형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다. 형식은 얼른 손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왔는지 형식도 모른다. 선형은 인사도 아니 하고 형식의 나가는 양을 보았다.
선형은 책상에 기대어서 눈을 감고 혼자 생각하였다. 형식이가 하던 말이 분명하게 생각이 난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말을 어떻게 하는가. 부끄럽지도 아니한가. 이러한 말을 부끄럼 없이 하는 형식은 암만해도 단정한 남자는 아닌 것 같다. 그것이 기생집에 가서 기생과 하던 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가 형식에게 욕을 당한 것 같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든지 동포를 사랑한다든지 부부는 서로 사랑할 것이라든지 하면, 그 사랑이란 말이 극히 신성하게 들리되, 남자가 여자에게 대하여, 또는 여자가 남자에게 대하여 사랑해 주시오 한다든지, 나는 사랑하오 한다든지 하면 어찌해 추해 보이고 점잖지 아니해 보인다. 선형이가 지금껏 가정과 교회에서 들은 바로 보건대, 다른 모든 사람은(사랑은) 다 거룩하고 깨끗하되 청년 남녀의 사랑만은 아주 불결하고 죄악같이 보인다. 선형은 사랑이란 생각과 말이 원래 남녀의 사랑에서 나온 것인 줄을 모른다. 이러므로 형식의 사랑에 관한 말은 적지 않게 선형을 불쾌하게 하였다. 선형의 생각에 자기의 지아비는 극히 깨끗하고 점잖은 사람이라야 할 터인데 그러한 소리를 염치없이 하는 형식은 죄인인 듯하다. 더러운 기생에게 하던 버릇을 내게다가 했구나 하고 선형은 한번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 형식이가 잡았던 손을 보았다. 그 큰 손 속에 자기의 손이 푹 파묻혔던 것과 자기의 손을 아프도록 힘껏 쥐어 주던 것을 생각하고 선형은 무엇이 묻은 것을 떨어 버리는 듯이 손을 서너 번 내어두르고 치마로 문대었다.
그러나 또 생각하여 본즉, 사랑하여 준다는 말과 손을 잡아 주던 맛이 아주 싫지도 아니하였다. 그뿐더러 형식이가 힘껏 손을 꼭 쥘 때에는 전신이 찌르르 떨리는 듯이 기쁘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다시 그 손을 내어들고 보다가 방그레 웃으며 가만히 입에 대어 보았다. 또 선형은 생각하였다. 자기는 과연 형식을 사랑하는가. ‘아내가 되었으니까 지아비를 사랑하느냐, 사랑하니까 그 지아비의 아내가 되었느냐’ 하던 말과 ‘만일 사랑이 없다 하면 약혼은 무효지요’ 하던 형식의 말을 생각하였다. 만일 그렇다 하면 부모의 명령은 어찌하는가. 내가 형식에게 사랑이 없다 하면 ‘나는 형식에게 사랑이 없어요. 그러니까 부모께서 정해 주신 이 혼인은 거절합니다’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혼인은 하느님께서 주장하신 신성한 것이니까 사람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형식의 말을 잘못이다. 형식의 말은 깨끗지 못한 말이다. 그러나 자기는 형식의 아내다. 결코 사람의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형식의 아내다.
선형은 일어나서 방으로 왔다갔다하다가 암만해도 마음이 정치 못하여 다시 책상에 기대어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이시여, 죄 많은 딸의 죄를 용서하시고 갈 길을 밝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하고 잠깐 주저하다가, “제 지아비를 정성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