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무정 - 041장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무정 - 041장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무정 - 041장

열한시가 넘어서 영채는 집에 돌아왔다. 형식은 영채의 집 문 밖까지 왔다가 자기 숙소로 돌아갔다. 청량리로서 다방골까지 오는 동안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고, 서로 얼굴도 보지 아니하였다. 차마 말을 할 수도 없고, 서로 얼굴도 볼 수가 없었음이라. 두 사람은 기쁜 줄도 슬픈 줄도 모르고,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도 생각지도 아니하였다. 두 사람은 생각이 많기는 많으면서도 또한 아무 생각이 없음과 같았다. 줄여 말하면 두 사람은 아무 정신도 없이 집에 돌아온 것이라.
영채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제 방에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내어 울며 쓰러졌다. 노파는 저편 방에서 잠이 들어 있다가 울음 소리를 듣고 치마도 아니 입고 뛰어나와 영채의 방문 밖에 와서 영채의 울어 쓰러진 양을 보고,
“왜 늦었느냐, 왜 우느냐?” 하면서 영채의 찢어진 옷을 보았다. 그러고 고개를 끄덱끄덱하며 빙긋이 웃었다. ‘영채가 오늘은 서방을 맞았구나’ 하였다. 자기도 열오륙 세 적에는 영채와 같이 누구를 위하는지 모르게 정절을 지키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민감사의 아들에게 억지로 정절을 깨트림이 되던 일을 생각하였다.) 자기도 그때에 대어드는 민감사의 아들을 팔로 떠밀다가 ‘이년!(괘씸한 년!)’ 하는 책망을 듣고 울던 일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는 자기는 기쁘게 남자를 보게 된 것을 생각하였다. 또 같은 남자와 오래 있기보다는 가끔 새로운 남자를 대하는 것이 더 즐겁던 것도 생각하였다. ‘나는 열아홉 살 적에 적어도 백 명은 남자를 대하였는데’ 하고 영채가 오늘에야 비로소 남자를 대하게 된 것을 불쌍하게 여겼다. 그러고 영채가 지금까지 남자를 대하지 아니함으로 얼마큼 교만한 마음이 있어 항상 자기를 멸시하는 빛이 있더니, 이제는 영채도 자기에게 대하여 큰소리를 못 하리라 하고 또 한번 빙긋이 웃었다.
“치마를 왜 찢겨? 치마를 찢기도록 반항할 것이 무엇이어?” 하고 노파는 흐득흐득 느끼는 영채의 등을 보며 생각한다. 못생긴 김현수가 영채에게 떠밀치우던 양과 더 못생긴 배명식이가 떠밀치고 악을 부리는 영채의 팔을 잡아 주던 양과, 영채가 이를 빠드득 하고 갈던 양을 생각하고 노파는 또 한번 웃었다. ‘못생긴 년! 저마다 당하는 일인데’ 하고 노파는 영채가 아직 철이 나지 못하여 그러함을 속으로 비웃었다. ‘남작의 아들!’ ‘그 좋은 자리에!’ 하고, 영채가 아직 철이 아니 나서 ‘좋은 자리’를 몰라보는 것이 가엾기도 하고 가증하기도 하다 하였다. ‘내가 젊었더면’ 하고 시기스럽기도 하였다. ‘지금이야 누가 나를 돌아보아야지’ 하고 늙은 것이 분하기도 하였다. ‘나는 저 못생긴 영감쟁이도 좋다고 하는데, 젊은 사람…… 게다가 남작의 아들을 마다고’ 하는 영채가 밉기도 하였다. 그러고 지나간 사오 년 동안 영채가 밤에 ‘손님을 치렀더면, 일년에 백 명씩을 치르더라도 한번에 오 원 치고 오백 명에 이천오백 원쯤은 더 벌었을 것을, 내가 약하여 저년의 미련한 고집을 들어주었구나’ 하고 영채를 발길로 차고도 싶었다. 그 동안 영채를 공연히 먹여 주고 입혀 준 것이 한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손을 치르기 시작하였는데’ 하고 여간 ‘천 원’ 돈에 영채를 김현수에게 파는 것이 아깝다. 이대로 한 이삼 년 더 두고 이전에 밑진 것을 봉창하리라 하였다. ‘옳지, 그것이 상책이다’ 하고 또 한번 웃었다. 만일 김현수의 첩으로 팔더라도 이번에는 ‘이천 원’을 청구하리라. 김현수가 이제는 이천 원이 아니라 이만 원이라도 아끼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옳다, 그것이 좋다. 영채를 오래 두면, 혹 병이 들는지도 모르니, 약값을 없이하고, 혹 송장을 치르는 것보다 한꺼번에 이천 원을 받고 팔아 버리는 것이 좋다 하였다. 내일 아침에는 식전에 김현수가 오렷다. 오거든 그렇게 계약을 하리라 하고 또 한번 웃었다.
노파는 영채가 점점 더욱 느끼는 양을 보았다. 그러고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무서운 마음이 생겼다. 한번 평양에 있을 때에 김윤수의 아들이 억지로 영채의 몸을 범하려다가 영채가 품에서 칼을 내어 제 목을 찌르려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 후부터 김윤수의 아들이 ‘독한 계집년!’ 하고 다시 오지 아니하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노파는 얼른 영채의 방 안을 둘러보고 또 영채의 손을 보았다. 혹 칼이나 없는가 하고, 그러고 노파의 머리에는 ‘칼’, ‘아편’, ‘우물’, ‘한강’이란 생각이 휙휙휙 돌아간다. 노파는 소름이 죽 끼쳤다. 그러고 영채를 보았다. 영채는 두 손으로 제 머리채를 감아쥐었다. 영채의 등은 들먹들먹한다. 노파는 눈이 둥그래졌다. 영채는 벌떡 일어나 시퍼런 칼을 뽑아 들고 자기에게 달려들어 ‘이년아! 이 도둑년아!’ 하고 자기의 가슴을 푹 찌르고 칼을 둘러 자기의 갈빗대가 부걱부걱 하고 소리를 내는 듯하다. 또 영채가 그 칼을 뽑아 자기의 목을 찌르니 빨간 피가 콸콸 솟아 자기의 얼굴과 팔에 뿌려지는 듯하다. 노파는 또 한번 흠칫하면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노파는 가만히 영채의 문 안에 들어섰다. 영채는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말로, “월화 형님! 월화 형님!” 하며 빠드득 이를 간다. 노파는 흠칫하고 도로 문 밖에 나섰다. ‘영채를 달래자’ 하였다. 그러고 ‘영채가 불쌍하구나’ 하였다. ‘영채를 꼭 안아 주자’ 하였다. ‘팔 년 동안이나 길러 온 내 딸이로구나!’ 하였다. 그러고 빙그레 웃으며,
“월향아! 얘, 월향아!” 하면서 문 안에 들어갔다.

무정 - 04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