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채는 수건으로 눈을 씻으며 얼굴을 찌푸리고 속으로 ‘에구 아파’ 하였다. 석탄 가루가 처음에는 눈 윗시울 속에 들어간 듯하더니 한참 비비고 난 뒤에는 어디 간지를 알 수 없고 다만 아프기만 하였다. 그래도 수건을 눈 속으로 넣어서 씻어 내려 하다가 마침내 나오지 아니함을 보고 영채는 화를 내어 차창에 손을 대고 손 위에 얼굴을 대고 엎디어 울었다. 지금껏 졸던 슬픔이 갑자기 깨어난 모양으로 눈물이 쏟아진다. 무슨 까닭인지도 모르게 그저 슬프기만 하여 소리를 참고 울었다. 지금껏 꿈속 같던 정신이 갑자기 쇄락하여지는 듯하였다. 지나간 모든 생각이 온통 슬픔을 띠고 분명하게 마음속에 일어난다. 영채는 눈에 석탄 가루 들어간 것도 잊어버리고 혼자 슬퍼서 울었다. 오늘 저녁이면 나는 죽는다. 나는 대동강에 빠진다. 이 눈물도 없어지고 몸에 따뜻한 기운도 없어진다. 오늘 본 산과 들과 사람은 다 마지막 본 것이다. 나는 몇 시간 아니 하여서 죽는다 하는 생각이 바늘 끝 모양으로 전신을 폭폭 찌른다. 내가 왜 났던고, 무엇 하러 살아왔는고, 하는 후회도 난다.
이때에 누가 영채를 가볍게 흔들며,
“여봅시오. 고개를 드셔요” 한다. 영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겨우 한 눈을 떠서 그 사람을 보았다. 어떤 일복 입은 젊은 부인이 수건을 들고,
“이리 돌아앉으세요. 눈에 석탄 가루가 들어갔어요? 제가 씻어 내 드리지요” 하고 방그레 웃더니 영채의 얼굴에 슬픈 빛이 있는 것을 보고 한번 눈을 치떠서 영채의 얼굴을 본다. 영채는 감사한 듯도 부끄러운 듯도 하면서 그 부인의 말대로 돌아앉으며,
“관계치 않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부인은 영채를 안을 듯이 마주앉으며,
“아니야요. 석탄 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잘 나오지를 아니해요” 하고 수건을 손가락 끝에 감아 들고 한편 손으로 영채의 눈을 만지며,
“이 눈이야요? 이 눈이야요?” 하다가 영채의 오른 눈 윗시울을 들고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수건으로 살짝 씻어 낸다. 그 하는 모양이 극히 익숙하고 침착하다. 영채는 하는 대로 가만히 앉았다. 그 부인의 피곤한 듯한 따뜻한 입김이 무슨 냄새가 있는 듯하면서도 향기롭게 자기의 입과 코에 닿는 것을 깨달았다. 부인은 좀더 바싹 영채에게 다가앉으며, 눈을 비집고 연해 고개를 기울여 가며 씻어 낸다. 부인은 화가 나는 것같이,
“에그, 남들이 없었으면 혓바닥으로 핥았으면 좋으련만” 하더니, “에라! 나왔어요. 이것 보셔요. 이렇게 큰 게 들어갔으니까” 하고 수건에 묻은 석탄 가루를 영채에게 보인다. 그러나 영채는 눈이 부시고 눈물이 흘러서 그것이 보이지를 아니한다. 부인은 걸상에서 일어나 영채의 겨드랑에 손을 넣어 일으키며,
“자, 세면소에 가서 세수를 하셔요” 하고 앞서 간다. 차가 흔들리건마는 그 부인은 까딱없이 평지로 가는 모양으로 영채를 끌고 차실 저편 끝 세면소로 간다. 가다가 차실 중간쯤 해서 자기와 같이 앉았던 양복 입은 소년에게서 비누와 수건을 받아 들고 간다. 그 맞은편에서 책을 보고 앉았던 어떤 양복 입은 사람이 두 사람의 모양을 우두커니 보고 앉았더니 다시 책을 본다. 영채는 비틀비틀하면서 그 부인의 뒤를 따라 세면소에 갔다. 부인은 대리석판에 백설 같은 자기로 만든 세면기에 물을 따라 손으로 휘휘 저어 한번 부셔 내고 맑은 물을 가뜩이 부어 놓은 후에 비눗갑을 열어 놓고 붉은 줄 있는 큰 타월로 영채의 어깨와 옷깃을 가리어 주고 한 손으로 영채의 허리를 안는 듯이 영채의 몸을 자기의 몸에 기대게 하고,
“자, 비누로 왁왁 씻읍시오” 하고 물끄러미 영채의 반질반질한 머리와 꽃비녀와 하얀 목과 등을 보며,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다가 이따금 영채의 어깨를 가리운 수건도 바로잡아 주고 귀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도 걷어올려 준다. 남이 보면 마치 형이 동생을 도와 주는 것같이 생각하겠다. 사실상 그 부인은 영채를 동생같이 생각하였다. ‘얌전한 처녀다. 재주가 있겠다. 교육이 있는 듯하다’ 하였다. 그러고 석탄 가루가 눈에 들어가서 울던 것을 생각하고 ‘어리다, 사랑스럽다’ 하였다.
영채는 슬프던 중에도 그 부인의 다정한 것을 감사하게, 기쁘게 여기면(서) 잘 세수를 하였다. 자기의 등에 그 부인의 손이 얹힌 것을 감각할 때에 월화에게 안기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그 부인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나 월화와 비슷하다 하였다. 그러고 그러나 나는 죽는다 하였다. 영채는 세수를 다 하고 일어섰다. 부인은 수건을 준다. 영채는 얼굴과 손을 씻었다. 부인은 수건을 달래서 영채의 목과 귀 뒤를 가만가만히 씻어 주었다. 영채는 눈을 떠서 정면으로 부인을 보았다. 영채의 눈은 벌겋다. 그러고 눈썹에는 아직 물이 묻어서 마치 눈물이 묻은 것 같다. 부인은 어머니가 딸을 보는 듯한 눈으로 빙그레 웃으면서 영채를 보더니 팔로 영채의 허리를 안으며,
“자 갑시다. 가서 점심이나 먹읍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