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교문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하였다. 그 월향이란 것이 영채가 아닌가. 원래 평양 기생으로 얼굴이 어여쁘고 아직 아무도 그를 손에 넣은 사람이 없다 하니 그가 과연 영채인가. 영채가 월향이란 이름으로 기생이 되어 이삼 삭 전에 서울에 올라와 지금 화류계에 유명하게 되었는가. 그러나 아무도 일찍 그를 손에 넣어 본 자가 (없다 하니, 그러면 나를 생각하여) 절행을 지킴이 아닌가. 옳다, 그렇다. 그가 나를 위하여 절행을 지킴이로다. 그런데 그가 마음대로 손에 들지 아니하므로 돈 많은 호화객들이 그를 아주 제 소유를 만들려 하여? 저 배학감 같은 자가 다 영채를 제 손에 넣으려 하여? 만일 영채가 잘못되어 배명식 같은 짐승 같은 자의 손에 든다 하면 그의 일생이 어떻게 될까. 배명식 같은 자가 무슨 사람에게 대한 동정이 있을까. 다만 일시 색에 취하여 더러운 욕심을 채울 양으로 영채를 장난감을 삼으려 함이로다. 더구나 배명식은 삼 년 전에 동경으로서 돌아와 칠팔 년간 홀로 자기를 기다리고 늙어 오던 본처에게 애매한 간음이라는 죄명을 씌워 이혼하고 작년에 어떤 여학생과 새로 혼인을 한 자다. 신혼한 일년이 차지 못하여 벌써 다른 계집에게 손을 대려 하는 그런 무정한 놈의 첩이 되어? 내 은인의 딸이! 못 될 일이로다. 못 될 일이로다 하였다. 사오 인의 경쟁자가 있다 하고 배명식도 거의 밤마다 영채를 찾아간다 하니 그 육욕밖에 모르는 짐승 같은 사람들의 새에 끼여 영채는 얼마나 괴로워하는고. 어제 영채가 나를 찾아옴도 이러한 괴로움을 견디다 못하여 마침내 내게 의탁할 양으로 온 것이 아닐까. 와서 내 의복과 거처가 극히 빈한함을 보매, 나에게 구원을 청하여도 무익할 줄을 알고 중도에 말을 그치고 돌아갔음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의 빈한함이 더욱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과연 형식은 영채를 구원할 자격이 없다. 만일 월향이라는 기생이 진실로 영채라 하면 과연 형식은 영채를 구원할 능력이 없다. ‘천 원 이상에 올라갔나 봅데다’ 하는 아까 어느 교사의 하는 말을 생각하고 형식은 한숨을 쉬었다. ‘천 원!’ 내가 만일 영채를 구원하려 하면―그 짐승 같은 사람들에게서 영채를 구원하여 사람다운 살림을 하게 하려면 ‘천 원’이 있어야 하리로다. 그러나 내게는 천 원이 있는가 하고 형식은 자기의 재산을 생각하여 보았다. 형식의 재산은 지금 형식의 조끼 호주머니에 있는 반이나 닳아진 돈지갑뿐이라. 그 돈지갑은 십 원짜리 지표를 가득하게 넣어도 이삼백 원이 들어갈까말까 한 것이라. 아직 형식의 돈지갑에는 한번에 백 원을 넣어 본 적도 없다. 일찍 동경서 졸업하고 올 때에 어떤 친구의 호의로 양복값, 노비 합하여 팔십 원을 넣어 본 적이 있을 뿐이니, 이것이 형식의 일생 두고 처음으로 많은 돈을 가져 본 경험이라. 동경서 돌아온 지가 사오 년이니, 매삭에 십 원씩만 저금을 하였더라도 오륙백 원의 저축은 있으련마는 형식은 아직도 이 생활을 자기의 진정한 생활로 여기지 아니하고 임시의 생활, 준비의 생활로 여기므로 몇 푼 아니 되는 월급을 저축할 생각은 없이 제가 쓰고 남는 돈은 가난한 학생에게 나눠 주고 말았다. 그러나 형식은 책을 사는 버릇이 있어 매삭 월급을 타는 날에는 반드시 일한서방에 가거나, 동경 마루젠 같은 책사에 사오 원을 없이하여 자기의 책장에 금자 박힌 책이 붇는 것을 유일의 재미로 여겼었다. 남들이 기생집에 가는 동안에, 술을 먹고 바둑을 두는 동안에, 그는 새로 사온 책을 읽기로 유일한 벗을 삼았다. 그래서 그는 붕배간에도 독서가라는 칭찬을 듣고 학생들이 그를 존경하는 또한 이유는 그의 책장에 자기네가 알지 못하는 영문, 덕문의 금자 박힌 책이 있음이었다. 그는 항상 말하기를, 우리 조선 사람의 살아날 유일의 길은 우리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세계에 가장 문명한 모든 민족, 즉 우리 내지(일본) 민족만한 문명 정도에 달함에 있다 하고, 이리함에는 우리나라에 크게 공부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야 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생각하기를, 이런 줄을 자각한 자기의 책임은 아무쪼록 책을 많이 공부하여 완전히 세계의 문명을 이해하고 이를 조선 사람에게 선전함에 있다 하였다. 그가 책에 돈을 아끼지 아니하고 재주 있는 학생을 극히 사랑하며 힘있는 대로 그네를 도와 주려 함도 실로 이를 위함이라.
그러나 ‘천 원’을 어찌하는고 하고 형식의 마음은 괴로웠다. 전달에 탄 월급 삼십오 원 중에 오 원은 플라톤 전집 값으로 동경 책사에 부치고 십 원은 학생들에게 갈라 주고, 팔 원은 주인 노파에게 밥값으로 주고, 이제 그 돈지갑에 남은 것이 오 원 지표 한 장과 은전이 좀 있을 뿐이라. 아아, ‘천 원’을 어찌하는가 하고 형식의 마음은 더욱 괴로워 간다. ‘천 원! 천 원!’ ‘천 원’이 어디서 나는가. 형식은 손수건으로 땀을 씻으며, “천 원이 어디서 나는가” 하고 소리를 내어 탄식하였다. 이렁저렁 교동 자기 숙소 앞에 다다랐을 때에 어떤 청년 이삼 인이 모두 번쩍하는 양복에 반쯤 취하여 비스듬히 인력거를 타고 기생을 앞세우고 기운차게 방울을 울리며 철물교를 향하여 내어닫는다. 형식은 성큼 뛰어 인력거를 피하여 주고 우뚝 서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여섯 채 인력거를 보고, “천 원이 있기는 있구나!” 하였다. 과연 지금 기생을 앞세우고 인력거를 몰아가는 청년들에게는 ‘천 원’이 아니라 ‘만 원’도 있기는 있다. 형식은 이윽히 그 자리에 섰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바람 한 점 아니 들어오는 자기의 숙소로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