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036장

형식은 한참이나 ‘계월향’이라고 쓴 광명등을 보고 섰다가 희경을 돌려보내고 결심한 모양으로 문 안에 들어섰다. 객이 없는지 적적히 아무 소리도 아니 들린다. 서슴지 아니하고 마당에 들어서니 여러 방에 불을 켰으되 사람 그림자가 없다. 형식은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어떻게 찾을 줄을 몰라 다만 발소리를 내며 ‘에헴’ 하고 크게 기침을 하였다. 저편 방으로서 뚱뚱한 노파가 나오는 것을 형식은 한 걸음 방 앞으로 (가까이) 갔다. 번적하는 화류자개 함롱이 보이고, 아랫목에는 분홍빛 그물 모기장이 걸리고, 오른편 구석에는 아롱아롱한 자루에 넣은 가얏고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섰다. 형식은 이것이 ‘영채의 방’인가 하였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슬픈 생각과 불쾌한 생각이 난다. 이 방에서 여러 남자로 더불어 저 가얏고를 타고 소리를 하고 춤을 추었는가. 그러다가 저 모기장 속에서 날마다 다른 남자와…… 형식은 차마 더 생각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영채는 어디 갔는가. 벌써 누구에게 ‘천 원’에 팔려 갔는가. 어젯저녁에 내 집에서 돌아오는 길로 팔려 가지나 아니하였는가. 또는 만일 영채가 절개가 굳다 하면 벌써 어디 가서 자살이나 아니하였는가. 이때에 형식의 머릿속에는 수천 가지 생각이 뒤를 대어 나온다. 형식은 저편 방으로서 나오는 뚱뚱한 노파―노파라 하여도 사오십이나 되었을까―를 보고, ‘저것이 소위 어미로구나’ 하였다. 노파는 손에 태극선을 들고 담뱃대를 물었다. 지금까지 웃통을 벗고 앉았었는지 명주항라 적삼 고름을 매면서 나온다. ‘더러운 노파’라는 생각이 형식의 가슴을 불쾌하게 한다. 노파는 형식의 모양이 극히 초라함을 보고 경멸하는 모양으로, “누구를 찾아요?” 한다. 일찍 형식이와 같이 초라하게 차린 자가 월향을 찾아온 적이 없었음이라. 노파의 생각에 아마 형식은 어떤 부자의 아들의 심부름꾼인가 하였다. 그러므로 기생의 집에 온 사람더러 “누구를 찾아요?” 하고 냉대함이라. 형식은 노파가 자기를 멸시하는 줄을 알았다. 그러고 더욱 불쾌한 마음이 생겼다. ‘나도 교육계에는 상당히 이름있는 사람인데’ 하였다. 그러나 노파의 눈에는 부자가 있고 오입쟁이가 있을 따름이요, ‘교육계에 상당한 이름있는 사람’은 없었다. 형식이가 만일 좋은 세비로 양복에 분홍 넥타이를 매고 술이 취하여 단장을 두르며 ‘여보게’ 하고 들어왔던들 노파는 분주히 담뱃대를 놓고 마당에 뛰어내리며 ‘에그, 영감께서 오시는구랴’ 하고 선웃음을 쳤으련마는, 굵은 모시 두루마기에 파리똥 묻은 맥고자를 쓰고, 술도 취하지 아니하고, 단장도 두르지 아니하고, ‘여보게’도 부르지 아니하는 형식과 같은 사람은 노파의 보기에 극히 하등 사람이었다. 형식은 겨우 입을 열어,
“월향 씨 어디 갔소?” 하였다. 그러고는 곧 ‘월향’에게 ‘씨’자를 달아 부른 것을 한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아직 남의 이름에 ‘씨’자를 아니 달고 불러 본 적이 없다. 더구나 남의 여자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씨’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소위 ‘째운 사람’들은 여학생을 (보고는 ‘씨’를 달고 기생을 보고는 ‘씨’를) 달지 아니할 줄을 알되, 형식은 여학생과 기생을 구별할 줄을 모른다. 형식의 생각에는 여학생이나 기생이나 사람은 마찬가지 사람이라 한다. 그러므로 형식은 ‘월향’에 ‘씨’를 붙이는 것이 옳으리라 하여 한참 생각한 뒤에 있는 용기를 다하여 ‘월향 씨 어디 갔소’ 한 것이언마는 말을 하고 생각한즉 미상불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고 노파의 얼굴을 보았다. 노파는 웃음을 참는 듯이 입을 우물우물하더니,
“월향 씨가 손님 모시고 어디 갔소. 왜 그러시오?”
“어디 갔습니까?”
노파는 ‘이것이 과연 시골뜨기로구나’ 하면서,
“아까 오후에 청량리 나갔소. 여섯점에 들어온다더니 아직 아니 오구려” 하고 성가신 듯이 ‘잘 가오’ 하는 말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고 만다. “누구요?” 하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에 “모르겠소. 웬 거랑방인데 왔구면” 하는 그 노파의 평양 사투리가 들린다. 형식은 일변 실망도 하고, 일변 그 노파에게 멸시받은 것이 부끄럽기도 분하기도 하면서 발을 돌렸다. ‘계월향! 계월향이가 과연 박영채의 변명인가’ 하고 계월향의 내력을 물어 보고도 싶었으나 노파에게 그러한 멸시를 받고는 다시 물어 볼 용기도 아니 나서 그만 대문 밖에 나섰다.
형식은 고개를 숙이고 아까 오던 길로 나온다. 아까 올 때에 ‘반나마 늙었으니……’ 하던 목소리로 ‘간다 간다네 나는 간다네’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까 모양으로 여럿이 함께 웃는 웃음 소리가 들린다. 어찌할까 하고 형식은 생각하였다. ‘청량리! 오후에 나가서 여섯점엔 온다던 것이 아직 아니 들어와!’ 형식은 이 말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 듯이 생각하고 몸이 오싹하였다. ‘영채가 혼자 어떤 남자로 더불어 청량리에 가 있어! 더구나 밤이 여덟시나 지났는데!’ 하고 형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형식은 전속력으로 다방골 천변으로 내려온다. ‘옳다! 청량리로 가자’ 하였다. 형식의 귀에 영채가 우는 소리로 ‘형식 씨, 나를 건져 주시오, 나는 지금 위급하외다’ 하는 듯하다. 형식은 지금 광충교로 지나가는 동대문행 전차를 잡아탈 양으로 구보로 종각을 향하여 뛰었다. 그러나 전차는 찌구덩 하고 소리를 내며 종각 모퉁이를 돌아 두어 사람을 내려놓고 달아난다. 형식은 그래도 십여 보를 따라갔으나 전차는 본체만체하고 청년회관 앞으로 달아난다. 야시에는 아까보다도 사람이 많이 모였다. 종각 모퉁이 컴컴한 데로서 ‘에, 아이쓰구림, 아이쓰구림’ 하는 늙은 총각의 목소린 듯한 것이 들린다.

무정 - 03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