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063장

두 사람은 칠성문을 나섰다. 길가에는 쓰러져 가는 집들이 섰다. 철도가 생기기 전에 지나가는 손님도 있어서 술도 팔고 떡도 팔더니 지금은 장날이나 아니면 사람 그림자도 보기가 어렵다. 문 밖에는 문짝 모양으로 만든 소위 ‘평상’이란 것을 놓고, 그 위에는 다 떨어진 볏짚 거적을 폈다. 어떤 낡디낡은 탕건을 쓴 노인이, 이 더운 때에 때묻은 무명옷을 입고 할일이 없는 듯이 평상에 앉아서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하면서 두 사람의 지나가는 양을 본다. 그 노인의 얼굴은 붉고 눈에 빛이 있으며 매우 풍채가 늠름하다. 형식은 그가 수십 년 전 조선이 아직 옛날 조선으로 있을 때에 선화당(宣化堂) 안에서 즐겁게 노닐던 사람인 줄을 알았다. 그러고 형식의 고향에도 일찍 그 골에서 내로라 하고 번쩍하게 행세하던 사람들이 갑오 이래로 세상이 졸변하매 모두 시세를 잃고 적막하게 지내는 노인이 있음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우뚝 서며 그 노인을 다시 보았다. 그 노인도 두 사람을 본다.
저 노인도 갑오 전 한창 서슬이 푸르렀을 적에는 평양 강산이 다 나를 위하여 있고, 천하 미인이 다 나를 위하여 있다고 생각하였으리라. 그러나 갑오년 을밀대 대포 한 방에 그가 꿈꾸던 태평시대는 어느덧 깨어지고 마치 캄캄한 밤에 번개가 번쩍하는 모양으로 새 시대가 돌아왔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이 되고 세상은 그가 알지도 못하던, 또는 보지도 못하던 젊은 사람의 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철도를 모르고 전신과 전화를 모르고 더구나 잠행정이나 수뢰정을 알 리가 없다. 그는 대동문 거리에서 오 리가 못 되는 칠성문 밖에 있으면서 평양 성내에서 날마다 밤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그의 머리에는 선화당이 있을 뿐이요, 도청(道廳)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영원히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리니, 그는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서 이 세상 밖에 있음과 (같다.) 형식과 그 노인은 전혀 말도 통하지 못하고 글도 통하지 못하는 딴나라 사람이로다. ‘낙오자(落伍者), 과거(過去)의 사람’이라 하는 생각과 함께 자기가 아무리 새 세상 이야기를 하여도 못 알아듣다가 세상을 버린 자기의 종조부를 생각하였다. 그러고 형식은 그 노인에게 대하여 일종 말할 수 없는 설움을 깨달았다. 계향은 형식이가 오래 서서 무슨 생각을 하는 양을 보다가 형식의 소매를 끌며, “어서 가세요!” 한다. 형식은 다시 그 노인을 돌아보고 ‘돌로 만든 사람이라’ 하다가 ‘아니다, 화석(化石)한 사람이라’ 하였다. 노인은 한참이나 형식을 보더니 무슨 생각이 나는지 눈을 감고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든다. 혜경(계향)은 가늘게,
“아시는 노인야요?” 한다. 형식은 계향의 어깨에 손을 놓고 걷기를 시작하면서,
“녜, 이전에는 알던 노인이더니 지금은 모르는 노인이 되고 말았어요” 하고 웃으며 계향을 본다. 형식은 생각에 ‘계향이 너는 영원히 저 노인을 알지 못하리라’ 하였다. 그러고 형식은 자기가 처음 평양에 올 때에 이리로 지나가던 생각을 하였다. 머리에 흰 댕기를 드리고 감발을 하고 아장아장 이 길로 지나가던 소년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그 소년은 저 노인을 알았다 하였다. 대동문 거리에서 커다란 유리창을 보고 놀라고, 대동강 위에서 ‘쌩’ 하고 달아나는 화륜선을 보고 놀라던 소년은 그 노인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하던 소년은 이미 죽었다. ‘쌩’ 하는 화륜선을 볼 때에 이미 죽었다. 그러고 그 소년의 껍데기에 전혀 다른 이형식이라는 사람이 들어앉았다. 마치 선화당(宣化堂)이던 것이 도청(道廳)이 되고 감사(監司)이던 것이 도장관(道長官)이 된 모양으로. 그러고 곁에 오는 계향을 보았다. 계향과 그 노인과의 거리를 생각하였다. 그 거리는 무궁대(無窮大)라 하였다. 형식은 어느 집 모퉁이로 돌아서려 할 때에 다시 그 노인을 보았다. 그러나 그 노인은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한다. 계향도 그 노인을 보더니,
“녜? 어떤 노인이야요?” 한다.
“계향 씨는 모를 노인이오” 하고 웃을 때에 계향은 의심나는 듯이 형식의 얼굴을 본다. 가만히 형식의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성 밑 비탈길로 남쪽을 향하고 나아간다. 그리 길지 아니한 풀잎사귀가 내려쪼이는 볕에 조곰 시들어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형식은 무너져 가는 성을 바라보고, 저 성을 쌓은 조상의 얼과 저 성이 지금까지 구경한 조상을(조상의) 성하던 것, 쇠하던 것과 저 성이 그 동안에 몇 번이나 총알을 맞고 대포알을 맞았는고 하는 생각을 한다. 비탈 위에 우뚝 섰는 오랜 성이 마치 사람과 같이 정도 있고 눈물도 있는 것같이 생각되고, 할 말이 많으면서도 들어 줄 자가 없어서 못하는 듯한 괴로워하는 빛이 보이는 듯하다.
계향은 땀을 발발 흘리고 형식의 뒤로 따라가면서 아까 자기가 형식에게 오빠 하고 부르던 생각이 난다. 계향은 아직도 오빠라고 불러 본 사람이 없었다. 계향은 그 어머니의 외딸이요, 또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자세히 모르므로 아는 친척도 없었다. 그러므로 계향이가 형님 하고 부르는 사람은 이삼 인 되건마는 오빠 하고 부를 사람은 없었다. 계향뿐 아니라 계향의 주위에는 오빠, 누나 하고 지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계향이 있는 사회는 대개 여자의 사회요, 대하는 남자는 대개 기생집이라고 놀러 오는 손님뿐이었다. 계향은 처음 오빠 하고 불러 본 것이 매우 기뻤다. 아까 담뱃불을 붙여 줄 때보다 형식이가 더 정답게 보인다 하였다. 그러고 한번 더 오빠라고 불러 보고 싶었다. 두 사람은 죄인들의 무덤 있는 곳에 다다랐다.

무정 - 06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