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046장

형식은 석점이나 지나서야 잠이 들어 아침 아홉시가 되도록 잤다. 형식은 몹시 몸과 정신이 피곤하여 반쯤 잠을 깨고도 여러 가지로 뒤숭숭한 꿈을 꾸었다. 노파는 벌써 조반을 차려 놓고 사오 차나 형식의 방을 엿보았다. 형식이가 두루마기를 입은 채로 자리도 아니 펴고 자는 것을 보고 노파는 ‘웬일인고?’ 하였다. 그러나 노파는 어젯저녁 형식이가 늦게 잔 줄을 알므로 깨우려도 아니하고 모처럼 만들어 놓은 장찌개가 식는 것을 근심하였다. 이때에 신우선이가 대팻밥 모자를 제쳐 쓰고 단장을 두르며 들어오더니 노파를 보고,
“편안하시오. 이선생 있소?” 하고 쾌활히 점잖이 묻는다.
노파는 신우선을 잘 안다. 그러고 ‘시원한 남자’라고 형식을 대하여 비평한 일이 있었다. 노파는 웃고 마주 나오면서,
“어젯저녁에 늦게 돌아오셔서 새벽이 되도록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시더니 아직도 주무십니다그려. 저렇게 조반이 다 식는데” 하고 장찌개를 생각한다. 노파의 만드는 장찌개는 그다지 맛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노파는 자기가 된장찌개를 제일 잘 만드는 줄로 자신하고 또 형식에게도 그렇게 자랑을 하였다. 형식은 그 된장찌개에서 흔히 구더기를 골랐다. 그러나 노파의 명예심과 정성을 깨트리기가 미안하여, ‘참 좋소’ 하였다. 그러나 ‘참 맛나오’ 하여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노파는 이 ‘참 좋소’로 만족하였었다. 한번 신우선이가 형식으로 더불어 저녁을 같이 먹을 때에도 노파의 자랑하는 된장찌개가 있었다. 그때에 마침 굵다란 구더기가 신우선의 눈에 띄어 신우선은 그 험구로 노파의 된장찌개가 극히 좋지 못함을 비웃었다. 곁에 있던 형식이가 황망하게 우선의 입을 막았으나 우선은 일부러 빙긋 웃어 가며 소리를 높여 노파의 된장찌개 만드는 솜씨의 졸렬함을 공격하였다. 그때에 노파는 건넌방 툇마루에서 분한 모양으로 담배를 빨다가,
“나이 많으니깐 그렇구려” 하고 젊었을 때에는 잘 만들었었다는 뜻을 표하였다. 그 후로부터 노파는 우선을 ‘쾌활한 남자’라고 칭찬하지 아니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선을 보면 여전히 친절하게 하였다. 대개 더 자기의 된장찌개를 공격할까 두려워함이러라. 우선은 형식에게 이 말을 들었음이라,
“요새는 된장찌개에 구더기나 없소?” 하고 형식의 방에 들어가 큰소리로,
“여보게, 일어나게 일어나! 이게 무슨 잠이란 말인가” 하였다. 형식은 어렴풋이 우선과 노파의 회화를 들으면서도 아주 잠을 깨지 못하였다가 우선의 큰 목소리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책상 위에 놓인 둥그런 자명종을 본다. 우선은,
“시계는 보아 무엇 하게. 열점일세. 열점이어! 자 어서 세수하고 옷 입게. 조반 먹고.”
시계는 아홉점 반이었다. 형식은 우선이가 ‘어서 옷 입고―’ 하는 말을 듣고 비로소 어젯저녁 생각을 하고 영채의 생각을 하였다. 그러고 우선의 낯빛을 보고 무슨 일이 생긴 줄을 깨닫고, 또 그 일이 영채의 일인 줄도 짐작하였다. 그러고 어젯저녁 자기 혼자 잠을 못 이루고 생각하던 일을 생각하였다. 형식은,
“왜 무슨 일이 있는가.”
“어서 세수를 하고 조반을 먹어! 제가 할 걱정을 내가 하는데” 하고 책상 곁에 가서 영문책을 빼어 들고 초이스 독본 삼권 정도의 영어로 한자 두자 뜯어본다. 형식은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우선의 낯빛을 보고 말하는 양을 보매, 대체 영채에게 관한 일이어니 하면서 잇솔을 물고 수건을 들고 나간다. 우선은 형식의 세수하러 나가는 양을 보고 ‘너도 걱정이로구나’ 하였다. 우선은 형식의 인격이 으레 영채로 아내를 삼으리라 하였다. 그러나 영채로 아내를 삼으면 형식의 머릿속에 청량사 일이 늘 남아 있어 형식을 괴롭게 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형식을 괴롭게 하고 아니하게 함은 자기의 손에 있다 하였다. 대개 영채가 처녀요 아님을 아는 이는 김현수와 배명식과 자기의 삼인이 있을 따름이라. 우선은 이 비밀을 가지고 오래 두고 형식의 마음을 괴롭게 하리라. 그도 아니하면 자기가 영채를 어르다가 가만히 떨어진 분풀이를 어디다 하리요 하였다. 그러나 이는 우선의 악의에서 나옴이 아니라 어디까지든지 인생을 장난으로 알려 하는 우선의 한 희롱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라. 그러나 형식은 우선과 같이 세상을 장난으로 알지는 못하는 사람이라. 형식은 어디까지든지 인생을 엄숙하게 보려 한다. 그러므로 우선은 이럭저럭 한 세상을 유쾌하게 웃고 지나면 그만이로되, 형식은 인생에서 무슨 뜻을 캐어 내려 하고 세상을 위하여 힘있는 데까지는 무슨 공헌을 하고야 말려 한다. 그러므로 형식에게는 인생의 어떠한 작은 현상(現象)이나 세상의 어떠한 작은 사건이라도 모두 엄숙하게 연구할 제목이요, 결코 우선과 같이 웃고 지내어 보내지 못한다. 우선은 이러한 형식을 일컬어 아직도 ‘탈속을 못 하였다’ 하고, 형식은 우선을 일컬어 ‘세상에 무해무익한 사람’이라 한다. 그렇다고 우선은 세상의 문명과 행복을 증진하는 데 대하여 전혀 무관언(無關焉)하냐 하면 그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선도 아무쪼록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하려고는 한다. 다만 그는 형식과 같이 열렬하게 세상을 위하여 일생을 버리려는 열성이 없음이니, 형식의 말을 빌건대 우선은 ‘개인 중심의 지나식 교육을 받은 자’요, 형식 자기는 ‘사회 중심의 희랍식 교육을 받은 자’라. 바꾸어 말하면, 우선은 한문의 교육을 받은 자요, 형식은 영문이나 독문의 교육을 받은 자라.
형식은 두어 번 잇솔을 왔다갔다하고 얼른 세수를 하고 들어와 거울을 보고 머리를 가른다. 우선은 까닭도 없이 이 머리 가르는 것을 미워하여 형식을 보면 매양 머리를 깎으라 하고, 이따금 무슨 전제(前提)로 그러한 결론(結論)을 하는지 ‘머리를 가르는 자는 무기력한 자’라 한다. 우선은, “무슨 일이어? 응, 무슨 일이어?” 하고 된장찌개의 구더기를 골나하며(골라 가며) 간절히 듣고 싶어하는 형식의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방 안에서 벙글벙글 웃으면서 왔다갔다 거닐다가 형식이가 분주히 밥상을 물리기를 기다려 형식을 끌고 나간다. 노파는 밥상을 들내어 가면서 같이 나가는 두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밥상을 마루에 갖다 놓고 허리를 펴며,
“무슨 일이 있는고” 한다.

무정 - 04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