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049장

우선도 영채가 갑자기 평양에 갔단 말에 무슨 뜻이 있는 듯하게 생각하였다. 그러고 일어나 제 방으로 가는 노파에게 눈을 주었다. 이 ‘성묘’라는 알 수 없는 비밀을 설명할 자는 그 노파여니 하였다. 그러고 그 노파가 갑자기 일어나 제 방으로 가는 것이 이 비밀을 설명하는 데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 하였다. 형식과 우선 두 사람의 눈은 노파가 없어지던 문으로 몰렸다. 두 사람은 무슨 큰 사건이 발생하기를 기다리는 듯이 숨소리를 죽였다. 여름 볕이 모닥불을 퍼붓는 모양으로 마당을 내리쪼여, 마치 흙에서 금시에 불길이 피어 오를 듯하다. 기왓장에 볕이 비치어 천장으로 단김이 확확 내려온다. 형식의 오늘 아침에 새로 입은 모시 두루마기 등에는 땀이 두어 군데 내어비친다. 우선도 이마에 땀방울이 솟건마는 씻으려 하지도 아니하고 대팻밥 모자로 부치려 하지도 아니한다. 함롱 밑 유리로 만든 파리통에는 네다섯 놈 파리가 빠져서 벽으로 헤어오르려다가 빠지고, 헤어오르려다가는 빠지고 한다. 어디로서 얼룩고양이 하나가 낮잠을 자다가 뛰어나오는지 영채의 방 앞에 와서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하면서 형식과 우선을 본다.
이윽고 노파가 봉투에 넣은 편지를 하나 들고 나오며 우선을 향하여,
“월향이가 정거장에서 바로 차가 떠나려는데 이것을 주면서 이형식 씨가 누군지 이형식 씨라는 이가 오시거든 드리랍데다” 하고 그 편지를 우선에게 주며 얼른 형식의 얼굴을 본다. 아까 정거장에서 노파가 이 편지를 받을 때에는 이형식이라는 이가 아마 어떤 월향에게 놀러 다니는 사람이어니 하고, 월향이가 특별히 편지를 하리만큼 친한 사람이면 자기가 모를 리가 없겠는데 하고 의심하였었다. 그러나 차가 빨리 떠나므로 자세히 물어 보지도 못하고, 아마 어떤 사람에게 물어 보면 알려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선과 형식의 행동이 영채의 일을 근심하는 듯하는 양을 보고, 더구나 형식이가 이상히 고민하는 낯빛을 보일 뿐더러 ‘성묘!’ 하고 놀라는 양을 보고, 혹 그가 ‘이형식’이라는 사람이나 아닌가 하여 이 편지를 내어 온 것이요, 또 우선에게 이 편지를 주면서도 얼른 형식의 낯빛을 엿봄이라. 형식은 우선이가 받아 든 편지 피봉에 매우 익숙한 글씨로 ‘이형식 씨 좌하(李亨植氏座下)’라 한 것을 보고, “에!” 하고 놀라는 소리를 발하면서 우선의 손에서 그 편지를 빼앗아 봉투의 뒤 옆을 보았다. 그러나 뒤 옆에는 ‘유월 이십구일 조(六月二十九日朝)’라고 쓴 밖에는 아무것도 쓰지 아니하였다. 형식의 그 편지 든 손은 떨린다. 우선도 ‘무슨 까닭이 있구나’ 하고 숨소리를 죽였다. 노파는 두 사람의 놀라는 얼굴을 보고 ‘웬일인가’ 하여 역시 놀랐다. 그러고 월향이가 이번에 평양에 간 것에 무슨 큰뜻이 있는 듯하다 하였다. 오늘 아침 월향은, 어젯저녁의 슬퍼하던 빛이 없어지고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분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고, 모시 치마 저고리에 여학생 모양으로 차리고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아니한 노파의 방에 와서 아주 유쾌한 듯이 방글방글 웃으며,
“어머니, 어젯저녁에는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자고 나서 생각하니 그런 우스운 일이 없어요” 하기에, 걱정을 품고 자던 노파는 너무도 기뻐서 월향의 손을 잡으며,
“그러니라. 잘 생각하였다. 내가 기쁘다” 하였다. 그러고 이제는 안심이로다. 이제는 밤에 손님도 치르게 되려니 하고 두 겹으로 기뻤었다. 그때에 영채는 말하기 미안한 듯이 한참이나 주저하더니,
“어머니, 저는 평양이나 한번 갔다가 오려 합니다. 가서 오래간만에 아버지 성묘도 하고 좀 바람도 쏘이게……” 하였다. 노파는 그 슬퍼하고 고집하던 마음을 고친 것이 반갑고, 어젯저녁에 월향을 안고 울 때에 얼마큼 애정도 생겼고―자고 나서는 사분의 삼이나 식었건마는―또 조고마한 일이면 제 소원대로 하여 주는 것이 좋으리라 하여,
“그래라. 석 달이나 넘었는데 한번 가고 싶진들 않겠느냐. 가서 동무들이나 실컷 찾아보고 한 삼사 일 놀다가 오너라” 하고 몸소 정거장에 나가서 이등 차표와 점심 먹을 것과, 칼표 궐련까지 넉넉히 사주고, “가거든 아무아무에게 문안이나 하여라. 분주해서 편지도 못 한다고” 하는 부탁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대체 월향은 이삼 일 후면 방글방글 웃으면서 돌아오려니만 믿고 있었더니, 지금 우선과 형식 양인이 이 편지를 보고 대단히 놀라는 양을 보매, 월향이가 이번 평양에 간 것에 무슨 깊고 무서운 사정이 있는 듯하여 가슴이 뜨끔하다. 노파는 불현듯 오 년 전 월화의 생각을 하고, 월향이가 항상 월화가 준 누런 옥지환을 끼고 있던 것을 생각하고, 어젯저녁 청량리 일을 생각하고 눈이 둥그래지며,
“월향이가 왜 평양에 갔을까요” 하고 두 사람이 노파에게 물으려던 말을 노파가 도리어 두 사람에게 묻는다.
형식이가 그 편지를 들고 멍멍하니 앉았는 양을 보고 우선도 조민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여보게, 그 편지를 뜯게” 한다.
형식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의 한편 끝을 잡았다. 그러나 형식은 차마 떼지 못한다. 그 손은 점점 더 떨리고 그 얼굴의 근육(筋肉)은 점점 더욱 긴장(緊張)하여진다. 우선은, “어서, 어서!” 하고 봉투를 떼기를 재촉한다. 노파는 저 속에서 무슨 말이 나오겠는고 하고, 봉투의 한편 끝을 잡은 형식의 손만 본다. 세 사람의 가슴은 엷은 여름 옷 아래서 들먹들먹하고, 세 사람의 등에는 땀이 내어 배었다. 문 앞에 서서 방 안을 들여다보던 고양이가 지붕에 참새를 보고 ‘냥’ 하면서 뛰어간다. 형식의 떨리는 손은 마침내 그 봉투의 한편 끝을 찢었다. 찢는 소리가 대포 소리와 같이 세 사람의 가슴에 울렸다.

무정 - 05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