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118장

선형은 몹시 무서운 생각이 난다. 자기의 내장이 온통 빠지직 타는 듯하고 코로는 시커먼 불길이 활활 나오는 듯하다. 씨걸씨걸 하는 자기의 숨소리가 마치 자기의 곁에 어떤 커다란 마귀가 와 서서 후후 찬 입김을 불어 주는 것 같다. 자기의 몸이 마치 성경을 배울 때에 상상하던 컴컴한 지옥 속으로 둥둥 떠 들어가는 것 같다. 선형은 흑 하고 진저리를 치며 차실 내에 여기저기 앉아 조는 사람들을 돌아본다. 그 사람들도 모두 다 무서운 마귀가 된 것 같다. 그 사람의 얼굴들이 금시에 눈을 뚝 부릅뜨고 자기를 향하고 달려들 것 같다.
‘아이구 무서워!’ 하고, 선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얼굴을 가리면 영채와 형식의 모양이 또 보인다. 둘이 꼭 쓸어안고 뺨을 마주대고서 비웃는 얼굴로 자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가 그 곁에 섰다가 퇴 하고 침을 뱉으면 영채와 형식이가 갑자기 무서운 마귀가 되어서 ‘응’ 하고 자기를 물어뜯는 것 같기도 하다. 선형은 ‘아이그 어머니!’ 하고 푹 쓰러졌다. 선형의 몸은 알 수 없는 무서움으로 들들 떨린다. 선형은 얼른 하느님 생각을 하고 기도를 하려 하였다. 그러나 ‘하느님, 하느님’ 할 따름이요, 다른 말이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몇 번 하느님을 찾다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이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말았다. 그만해도 얼마큼 무서운 생각이 없어지고 숨소리가 순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형은 곁에 그리스도가 와서 선 것을 상상하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때 형식이가 우선으로 더불어 돌아왔고, 또 선형의 손등에 입을 댄 것이라. 선형은 그때에 결코 잠이 든 것은 아니었다. 형식이가 돌아오는 줄을 알면서도 일부러 눈을 뜨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형식의 입술이 자기의 손등에 댈 때에는 손등으로 형식의 면상을 딱 붙이고 싶도록 미웠다. 이것이 다 기생과 하던 버릇이로구나 하였다.
그러고는 선형도 잠이 들었다. 휘황하던 전등은 밤새도록 이 두 괴로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고 커다란 눈을 부릅뜬 시커먼 기관차는 캄캄한 밤과 내려쏟는 비를 뚫고 별로 태우고 내리우는 사람도 없이 산굽이를 돌고 굴을 통하여 여러 가지 꿈을 꾸는 여러 가지 사람을 싣고 남으로 남으로 향하였다.
두 사람이 잠을 깬 것은 차가 삼량진역에 닿을 적이었다. 시계의 짧은 침은 벌써 다섯시를 가리켰으나 하늘이 흐려 아직도 정거장의 등불이 반작반작한다.
차장이 모자를 옆에 끼고 은근히 고개를 숙이더니,
“두 군데 선로가 파손되어 네 시간 후가 아니면 발차할 수가 없습니다” 한다.
자다가 깬 손님들은 모두 눈을 비비며 “응, 응” 하고 불평한 소리를 하다가 모두 짐을 꾸며 가지고 내린다. 어떤 사람은 차창으로 내다보다가,
“저 물 보게, 물 보게!” 하며 기쁜지 슬픈지 알 수 없는 감탄을 발한다. 비 외투를 입은 역부들은 나는 상관없다, 하는 듯이 시치미떼고 슬근슬근 열차 곁으로 왔다갔다한다. 정거장은 무슨 큰일이나 난듯이 공연히 수선수선한다. 형식은,
“우리도 내리지요. 네 시간을 어떻게 차 속에 있겠어요” 하고 선형을 본다. 선형은 형식의 입을 보고 어젯저녁 자기의 손등에 대던 생각을 하고 속으로 우스워하면서,
“내리지요!” 하고 먼저 일어선다. 형식은 가방과 담요들을 한데 들고 앞서 내리고 선형은 형식의 보던 책과 자기의 손가방을 들고 형식의 뒤를 따라 내렸다. 개찰구 곁에 갔을 적에 병욱이가 뛰어오며 뉘게 하는 말인지 모르게,
“내리셔요!” 하고 아침 인사를 잊어버린 것을 생각하고 웃는다.
“녜, 네 시간이나 어떻게 기다리겠습니까. 여관에 들어 좀 쉬지요…… 물구경이나 하고요.”
“그러면 저희도 내리겠습니다. 잠깐 기다려 주셔요!” 하더니 저편으로 뛰어간다. 형식과 선형의 눈도 그리로 향하였다. 영채가 이편으로 향한 차창에 서서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보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다. 형식은 ‘어찌하나’ 하고, 선형은 ‘조 요물이’ 하였다. 병욱이가 뛰어가서, “얘, 우리도 내리자. 저이들도 내리시는데” 하고 뒤를 돌아보는 것을 보고야 비로소 영채도 형식과 선형을 보았다. 그러고 얼른 고개를 움촐하였다.
병욱이가 앞서고 영채는 병욱의 뒤에 서서 병욱의 그늘에 자기의 몸을 감추려는 듯이 비실비실 형식의 곁으로 온다. 병욱이가 실적 빗겨 서매 영채와 형식과는 정면으로 마주서게 되었다. 영채는 형식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다음에 선형을 향하고 방그레 웃으며 은근하게 인사를 하였다. 선형도 웃으며 답례하였다. 그러나 둘이 다 일시에 얼굴을 붉혔다.
네 사람은 열을 지어서 개찰구를 나섰다. 일없는 손님들은 네 사람의 행색을 유심히 보며 혹 웃기도 하고 수군수군하기도 한다. 마치 형식이가 세 누이를 데리고 가는 것 같다. 대합실에서 여관 하인에게 짐을 맡기고 네 사람은 그 하인의 뒤를 따라 나가다가 정거장 모퉁이에 서서 붉은 물이 굽실굽실하는 낙동강을 본다.